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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 율 Feb 19. 2022

나이

(연습하다가 2탄)

나이를 세지 않고 살았었다.


대학 1학년 2학년 3학년 4학년.

석사 1년차, 2년차,

박사 1년차, 2년차, 3년차, 4년차, 5년차.


석사 가기전에 1년 유학준비를 하고,

석사 졸업 후 박사 오디션을 다시 보기까지 또 드라마같은 일들이 있었다. (짧게 말하자면, 한국에서 2년정도 머물렀다.)


(또한 위의 학위말고, 전문 연주자 과정과, 전공이랑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전공으로 두번째 석사학위를 취득하기도 하였다. 배우는 것은 늘 즐거웠다.)


그렇게 하다보니, 세월이 많이 흘렀고, 박사졸업 후 나이를 세어보니, 30대 초중반이 되어있었다. 운이 좋게도, 박사학위를 따자마자, 학위를 받은 학교가 직장이 되었다. 그렇게 4년. (직장 1년차, 2년차, 3년차, 4년차.)


그리고 나는 코로나의 한 복판에서 귀국했다.


한국에 와서 처음 받아본 컬처 쇼크는, 만나는 사람마다 나이를 물어보고, 결혼은 했느냐는 질문을 서스럼 없이 한다는 것이었다.


미국에서는 그런 질문을 12년 반동안 받아본적이 없고, 누가 그런 질문을 하면, 갑분싸가 되고, 무례한 사람으로 낙인찍힌다.


어른들이 물어보면, 정색을 하거나, 대답을 회피할 수가 없어, (어쩌면 사실은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줄까 하는 기대감으로), 대답을 하기위해 나이를 세어보았다.


나는 12월생이라, 미국나이와 한국나이는 2살이 차이가 난다. 내가 8월에 귀국을 했으니, 나는 분명 서른 중후반이었는데, 한국나이로는 서른 극후반이 되어있었다.


귀국하자마자 (또 운이 좋게도) 9월 부터 대학교에서 강의를 시작하였는데, 강의준비 하느라 첫학기를 그냥 다 써버렸다. (강의 준비를 이렇게 많이 하는건지 몰랐다. 학교다닐때는 교수님들이 그냥 들어오셔서 자신이 아는것을 쭉 말하고 끝내시는 줄 알았다.)


나는 그렇게 해가 바뀌자마자 40대가 되었다. 마음의 준비도 없이 40대를 시작했다.


나는 괜찮았다. 나는 지금의 내가 20대의 나보다 좋다. 10살 어린 남자와 이야기를 하다보면, 옛날 같았으면, 분개(?)할 이야기도, 10년전의 나를 생각해보며,


'그래 그때 나도 뭘 잘 몰랐었는데-'하며 그냥 지나갈 수 있었다.


분명 10년전의 나와 10년 후인 지금의 나는 너무 다르기에-


그래서 좋다. 경험치가 많아지니, 지혜로워진다.

부딪히지 않고, 둥글둥글 지나간다.


그런데, 최근 남자들은 어린여자를 좋아한다는 것을 피부에 와닿게 느끼면서 부터, 갑자기 주눅이 들었다.


외모에 자신이(?) 있었는데, 거울을 보면 자꾸만 변하는 모습이 애처롭다.


나의 속사람은 더 괜찮아지고 있는데, 겉사람은 변하고 있었다. 속상하다.


나는 미국나이를 세며 살고있다. 한국나이는 타당하지 않다. (12월 31일에 태어난 사람은 하루지나 2살이 되는거다.)


속사람을 더 가꾸는 것. 나를 알아봐줄 사람이 존재할 거라는 것. 나의 지나온 시간을 이해하고, 보듬어 줄 사람이 다가온다는 것.


'네루다의 시'를, '슈만-리스트의 헌정'을 선사해도 아깝지 않을 그 사람을 언젠가는 만나게 될거라는 믿음이 있다.


그리그런사람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되도록 나도 더 노력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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