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소정 Dec 02. 2017

두 번째 현실 도피를 갑니다.

이번엔 걸어서 미국을 종단할거예요. 2018년 PCT를 걷습니다.

    꽤나 오랜만에 브런치를 켰다. 종종 다른 사람의 글을 읽으러는 들어왔는데, 글을 쓰려고 로그인을 한 것은 실로 오랜만이다. 학교를 다니느라 바빴고, 주말 알바까지 병행하느라 주7일을 쉬지 않고 달리는 중이다. 중간에 하루는 위경련이 와서 학교를 빠졌던 날도 있었다. 사실, 지금도 굉장히 바쁘다. 새벽에 일어나서 다시 일하러 가야하는데, 동생이 시킨 치킨때문에 깼다. 다시 잠이 안 오는 틈을 타서 나의 두 번째 장기 여행 계획을 글로 써볼까 한다.


    최근에 나는 다시 항공권을 샀다. 엄마, 아빠, 동생 몰래 항공권을 샀다. 올해 4월 미국으로 출국해 10월에 귀국하는 표다. 용기가 없어 우리 식구들한테는 말을 못했지만, 친구들한테는 자랑하듯 얘기했다. 가족들에게 말하면 일단 한숨과 걱정이 앞서는데, 그 모습은 일단 보기 싫다. 나의 여행을 반대할 부모님의 모습에 지레 스트레스를 받았기 때문이다. 반면에 나의 친구들은 나를 한편으로는 부러워해주고, 한편으로는 응원해준다. 누군가는 그것을 뛰어 넘어 한심하게 볼 수도 있지만, 이들은 굳이 내 앞에서 티를 내지 않으니까 이들의 반응은 무시할 수 있다.


    나의 첫 장기여행이 현실 도피로부터 시작했다면, 두 번째 장기여행도 현실 도피의 연장선이다. 아직까지 너무나도 취업 준비가 하기 싫다. 졸업을 하지 않을 이유는 또 있었다. 우리학교는 졸업하려면 채플을 꼭 이수해야 하는데, 나는 이번학기를 열심히 듣고도 아직까지 2개의 채플을 더 이수해야한다. 레포트나 성경필사 등으로 대체할 수 있다고 알고있는데, 그렇게 하기는 싫다. 내가 좋아하는 학교에서 조금 더 오래 머무르다가 학교가 그만 질척대라고 나를 뱉어낼때까지 붙어있을 예정이다.


    최근 SNS에서 일명 '핫'했던 글에서 서론이 지나치게 장황하다는 비판이 있었는데, 나의 글 또한 서론이 굉장히 장황하다. 반성한다. 이 글을 읽는 사람은 고작 몇 명 되지 않을 거라고 굳게 믿기 때문에, 굳이 줄이려고 노력하진 않을 것이다. 아직 남미의 감상도 기록으로 다 옮기지 못했는데, 새로운 콘텐츠가 다시 쏟아질 상황을 보니, 그냥 남미든 북미든 내가 원할 때 원하는 주제로 몇 개 쓰고 말아야겠다.


    드디어 여행에 대한 계획을 발표하자면, 이번 장기여행은 북미다. 정확히는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 (PCT, Pacific Crest Trail)이다.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에서 시작해 미국-캐나다 국경까지 약 5개월을 걸어서 여행하는 도보 종단 코스다. 미국 서부, 태평양을 따라서 난 산맥의 능선(?)을 따라 걷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편할 것 같다. 장기 여행이라곤 관광지밖에 안 가본 내가, 한국에서는 하이킹이나 캠핑, 백패킹을 즐기지 않는 내가 이 무모한 도전을 해낼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자꾸 내 앞을 가로막는다. 하지만 재밌을 것 같다. 그리고 사람일은 어떻게든 되게 되어있다는 나의 인생의 모토가 나를 응원하고 있다. 무모하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는 여행이라는 확신이 든다. 마치 장수 예능인 무한도전이 처음에 무모한 도전에서 시작했듯이?


    브런치를 보면 PCT를 먼저 종주하신 한국인 분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트리플 크라운(미국의 장거리 하이킹은 PCT, CDT, AT 3가지로 대표되는데,세 개를 모두 종주한 사람을 나타낸다)을 해내신 분도 있고, 두 개의 코스를 종주하신 분들도 있다. 한국의 PCT 종주자 선배님(?) 분들께서 쓰신 책을 읽었고, 쓰실 책을 기다리고 있다. 나의 목표가 있다면, 나처럼 하루에도 수백번 흔들리는 청춘이 볼 만한 글을 쓰는 사람이 되어 돌아오는 것이다. 왕년에 글은 좀 못쓰더라도 말빨 하면 또 박소정이었는데, 음주를 시작한 이래로 말빨도 줄어서 나의 생각을 전하고, 남들의 공감을 얻는 일이 꽤나 힘들어졌지만, 방황하고 불안해 하는 사람들에게 동료가 되고 싶다. 그들이 흔들리지 않도록 깊은 뿌리가 되어준다든지, 지지대가 되어주는 것은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그냥 흔들리고 있는 내가, 흔들리는 그들의 손을 잡고 같이 흔들려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나의 두 번째 여행의 목표다.


    나는 항상 되뇐다. 나의 어쭙잖은 위로는 오히려 누군가에게 상처를 안겨줄 수 있다고. 나의 단편적인 시각을 반영한 조언은 누군가에겐 폭력이 될 수 있다고. 그래서 함부로 위로도 조언도 할 수 없다. 두렵다. 내가 함부로 누군가를 위로하고 조언했다가 그들이 안 좋은 선택을 했다고 후회할까봐 두렵다. 나는 누가 뭐라 하더라도 소시민이다. 타인의 원망을 받지 않으면서도 내가 힘이 될 수 있는 방법은 그저 그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존재한다는 것 자체에 가치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뿐이다. 내가 가진 천성이 그런 것이기 때문에, 나는 이를 이용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 그렇다고 꼭 쓰여야 한다는 말은 또 아니다.


    오늘 글을 쓰면서도 느껴진다. 나의 언어가 짧고, 나의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는 것이 느껴진다. 이러한 생각들을 정리하고 말로, 글로 풀어낼 수 있도록 만들어서 귀국하는 것이 내 이번 여행의 목표다. 누군가는 "네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알겠어"라고 나에게 공감을 보내줄 수 있지만, 나 스스로도 그렇게 애매한 방법으로 추상적이고 확신이 없는 표현으로 나의 생각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다. 오늘은 그저 일기에 불과하지만, 그 언젠가는 일기 이상이 되기를 기대하면서, 오늘 글은 여기서 접으려고 한다.


    p.s. 경비 마련을 위해서 다시 악착같이 일을 하려니까 아주 앞이 깜깜하다. 여행은 좋지만,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은 다른 사람들의 그저 그런 일상과 비슷하거나, 때로는 그것보다 열악한 경우가 많다는 것을 너무나도 오랫동안 까먹고 있었다. 다시 눈에 보이기 시작하니 막막하다. 친구들이 회사를 다니면서 고정적으로 벌어들인 수입과, 짧은 여행 후에 돌아와서 제로 베이스에서 시작하지 않아도 된다는사실은, 종종 여행하는 게 더 좋은 내 삶에 의문부호를 남기기도 한다.

작가의 이전글 개강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