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운 소식을 전하려 늦은 시간에 글을 씁니다. 기대했던 2018년도 PCT를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당연스럽게 가게 될 거라고 생각했고,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했던 일이었던 만큼 스스로도 아쉬움이 너무 큽니다.
사실 이번 일정을 포기하게 되면 다시 언제 PCT를 갈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포기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PCT를 걷는다는 것은 이 세상에 순응하지만은 않겠다는 일종의 반항의 표현이었습니다. 세상이 정해놓은 틀에 맞춰 살지 않겠다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겠다고 다짐하면서 결정했던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더 이 여정을 포기하는 게 힘이 드나 봅니다. 그렇지만 포기하는 것 또한 용기있는 일이라며 스스로 위로해봅니다.
당장에 퍼밋을 받는 동안에도 문제가 있었어서 마음 고생을 심히 했습니다. 별 문제는 아니었는데, 말이 통하지 않는 + 일처리가 한국만큼 빠르지 않다는 문제로 괜히 몇 주 마음을 썼습니다. 그 동안 속으로 ‘만약에 퍼밋 안나오면 깔끔하게 접고, 퍼밋 나오면 고생한 게 아까워서라도 완주해야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과적으로 퍼밋은 나왔지만 갈 수가 없게 됐네요.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께서 궁금해하실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포기하는 이유를 적어보자면 이렇습니다. 첫째로 원래도 무릎이 좋지 않았는데 최근 패럴림픽에서 일을 하면서 무릎 근육에 다시 염증이 생겼습니다. 초반에 바로 치료를 하고 쉬었더라면 금방 나았을텐데, 무리한 일정에 치료를 못하고 계속 돌아다녔더니 이제는 집 밖을 조금 나서도 곧잘 아프게 되었습니다. 이 무릎으로 하루에 수십킬로를 걸어내는 건 현실적으로 힘들다고 판단했습니다. 물론 제 전공이 고통을 참는 것이기 때문에 욕심을 부리면 갈 수야 있겠지만, 내일의 체력은 끌어다 쓰더라도 내일의 신체를 끌어다 쓸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몇 년간 괜찮았던 부위라 아팠다는 걸 생각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너무나도 아쉽습니다. 시기를 미뤄서 완전히 치료를 하고 가면 좋겠지만, 미루려니 여러가지 문제가 많아서, 그것도 포기했습니다.
두 번째이자 가장 큰 이유는 동생의 수험생활에 제가 꼭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동생은 지금 집에서 재수를 하고 있습니다. 밥 못챙겨먹을 애는 아니지만, 제가 잠시 자리를 비운 시기에 얘도 고삐를 놓아버렸습니다. 작년 고3 시절에 제가 남미를 다녀온 동안에도 많이 방황을 했고, 엄마가 그 사이에서 힘들어하는 모습을 참 모질게도 외면하면서 놀러다녔는데 일 년 새 스스로도 많이 바뀌었는지 이제는 그 모습들이 눈에 밟힙니다. 차마 외면하고 6개월이라는 긴 시간을 이 중요한 시기에 혼자 떠나버릴 수가 없어서 포기했습니다.
PCT를 걸으려고 졸업도 하지 않고 1년이나 휴학을 했는데, 참 아깝습니다. 저는 아마도 이 일년간 PCT가 끝나면 하려고 했던 일들을 1년 앞당겨 시작할 듯합니다. 꿈꿨던 일들이 정말 코 앞에 있었는데 물거품이 되어버려서 허망합니다. 스스로 내린 선택이지만 가보지 못했다는 사실에 또 누군가를 원망하며 시간을 보내겠지요. 아쉽습니다. 솔직히 아쉽다 못해 화가 나기도 합니다. 그리고 다시 저도 수험생의 신분으로 돌아갑니다. PCT가 끝나고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예상치도 못하게 빨리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힘든 순간들을 PCT의 기억으로 극복하며 수험생활을 하려 했는데, 이젠 어떤 기억을 꺼내 먹으며 희망을 보아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3주 뒤면 출국이었고, 이 때를 기다리며 돈도 악착같이 모았는데 참 허망하네요. 앞으로 살면서 몇 번 더 이런 경험을 겪을까요. 언젠가는 다시 꼭 PCT를 떠나리라 믿으면서 글을 마칩니다. 너무 오랫동안 후회와 원망의 시간을 보내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기나긴 수험생활이 되겠지만, 그 끝에 다시 제가 원했던 삶이 있으리라 믿으며 열심히 살아보겠습니다. 앞으로 이 브런치에 글을 얼마나 남길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네요. 참 여러모로 쉬이 잠들지 못하는 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