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새로운 언어
나는 이 교수님의 방식에 동의할 수 없었다. 그의 질서는 통제였고, 효율성은 감정의 거세를 의미했다. 나는 한서연과 함께 다시 ‘언어의 무덤’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모든 언어의 기원이 되는 ‘원초 언어’의 진짜 의미를 찾아야만 했다.
우리가 멈춰 선 곳은 거대한 돌벽 앞이었다. 돌벽에는 알 수 없는 기호들이 새겨져 있었다. 이 기호들은 이 교수님과 내가 젊은 시절 연구했던 고대 문명의 유물이었다. 우리는 이 기호들이 모든 언어의 기원이 되는 ‘원초 언어’의 조각들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우리는 단지 연구만 했을 뿐, 그것이 실제로 존재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손가락으로 돌벽에 새겨진 기호들을 훑어보았다. 그것들은 이 교수님이 말했던 것처럼, 단순히 의미 없는 그림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내 손끝으로 미묘한 진동을 보내왔다. 나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손끝으로 느껴지는 그 진동에 집중했다. 희미한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아니, 소리가 아니라, 어떤 감정이었다. 나는 기호들을 따라 손가락을 움직였다.
한서연은 나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그리고는 나를 따라 자신의 손가락을 돌벽에 가져다 댔다. 그녀는 나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기호를 느끼는 것 같았다. 나는 기호의 형태와 배열에 집중했지만, 그녀는 그 기호들이 만들어내는 '흐름'에 집중했다. 그녀의 손은 마치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그녀는 한 기호 앞에서 멈춰 섰다. 그 기호는 마치 '기억'이라는 단어를 형상화한 것 같았다. 그녀는 그 기호를 내 손바닥에 조심스럽게 그려주었다. 나는 그녀의 손가락 끝에서 느껴지는 감각에 집중했다. 그 감각은 희미했지만, 분명히 존재했다. 그 감각은 마치, 잃어버렸던 기억의 한 조각을 되찾는 기분이었다.
나는 잃어버렸던 첫사랑의 얼굴을 떠올리려 했다. 여전히 흐릿했지만, 그녀의 얼굴에서 느껴졌던 따뜻한 미소와 눈빛만큼은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나는 한서연의 손을 잡고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감각들을 그녀에게 전달하려 했다.
나는 나의 손바닥에 '슬픔', '기쁨', '분노' 같은 감정들을 그려주었다. 그녀는 나의 감정을 느끼고, 나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빛은 마치 '괜찮아, 이제 네 감정을 내가 지켜줄게'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돌벽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언어가 없는 세상에서, 우리는 고대 언어의 조각들을 통해 서로의 감정을 나누었다. 그것은 언어보다 더 원초적이고, 더 깊은 소통이었다. 나는 이 모든 혼란의 끝에, 우리가 진정한 '마지막 단어'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보았다. 그것은 아마도 언어가 아니라, 감정일 것이다. 감정은 사라지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