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새로운 언어
빛 속으로 걸어 들어간 순간, 나는 우주 한복판에 홀로 서 있는 기분이었다. '원초 언어'는 단어가 아니라 감각의 폭풍이었다. 수많은 감정과 기억, 그리고 의미들이 마치 쓰나미처럼 내 머릿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행복, 슬픔, 분노, 두려움... 언어로 규정되던 모든 감정들이 날것 그대로 내게 전달되었다. 나는 그 감정들에 압도되어, 내가 누구인지조차 잊어버릴 것 같았다. 언어가 사라지면서 비로소 내가 감정의 미아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 감정들 자체가 거대한 미로가 되어 나를 가두는 것 같았다.
나는 눈을 감았다. 아니, 감아야만 했다. 눈을 뜨고 있는 한, 세상의 모든 감각들이 나를 덮쳐왔으니까. 내 발밑의 돌멩이는 수억 년의 시간을 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고, 벽에 맺힌 물방울은 태초의 생명을 이야기하는 듯했다. 나는 이 모든 감각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내 머릿속은 수많은 의미들로 엉켜 있었고, 나는 그 의미의 실타래 속에서 길을 잃었다.
그때, 한서연의 손이 내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은 따뜻했다. 나는 그녀의 손을 통해 '평화'를 느꼈다. 혼돈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깊은 내면의 평화. 그녀는 내 손바닥에 손가락으로 천천히 글자를 그렸다. '집중'.
나는 그녀의 손짓을 따라, 모든 감각을 외면하고 그녀의 손끝에 집중했다. 그녀는 나를 이끌고 동굴 밖으로 나섰다. 햇살이 눈부셨다. 나는 그녀의 존재를 통해,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언어가 없어도, 우리는 함께였다. 그녀는 언어가 사라지기 전부터 이 감각의 세계에 익숙해져 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나에게 이 미로를 빠져나가는 길을 알려주는 조력자였다.
한서연은 내게 다가와 나의 얼굴을 감싸고, 그녀의 이마를 내 이마에 맞대었다. 그리고는 눈을 감았다. 나는 그녀의 이마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온기에 집중했다. 그녀의 감정들이 나에게로 흘러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괜찮아. 나도 길을 잃었었어.' 나는 그녀의 감정 속에서, 그녀의 과거를 보았다. 그녀는 언어가 없는 세상에서, 혼자만의 감정 속에 갇혀 외로워했던 것이다. 그녀는 나를 보며, 자신을 보았던 것이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나의 손바닥에 '두려움'을 그려 넣었다. 그녀는 나의 두려움을 느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내 손에 '이해'를 그려주었다. 나는 그녀의 손짓을 통해, 내가 언어가 없는 세상에서도, 나의 감정을 전달하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안의 미로 속에서, 나는 비로소 출구를 찾은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