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 재부팅 완료."
기계적인 음성과 함께 스크린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Zone-7의 모습,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빈 땅. 손을 흔들던 남자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한석, 너 괜찮아?" 민준의 목소리가 헤드셋을 통해 들려왔다. 걱정스러운 어조다.
"나... 나 지금 뭔가 이상한 걸 봤어."
"이상한 게 뭔데?"
한석은 입을 열려다가 멈춘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자기 자신을 봤다고? 10년 전의 모습을? 그런 말을 하면 민준이 뭐라고 할까?
"아니다. 그냥... 시스템 오류였나 봐."
"Control에서 시스템 점검한다고 했어. 뭔가 이상한 신호가 감지됐다나..."
그 순간, 한석의 스크린에 새로운 좌표가 나타난다. Zone-12. 이번엔 완전히 다른 지역이다.
"새 임무 좌표 수신. Zone-12로 이동하십시오."
"Zone-12?" 한석이 중얼거린다. "거기는..."
민간인 보호구역이다. 아직 '정화'되지 않은, 일반인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왜 갑자기 그곳으로?
드론이 방향을 바꾼다. 한석의 조작이 아니다. 자동으로, 시스템이 알아서 움직이고 있다. 이상하다. 보통은 조종사가 직접 조작하는데...
"민준, 너도 자동으로 움직여?"
"응? 뭐가?"
"드론이 알아서 움직이고 있어. 내가 조작하지도 않았는데."
잠시 침묵이 흐른다. 그리고 민준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린다.
"나... 나도 마찬가지야. 이거 뭔가 이상하지 않아?"
하지만 답할 시간이 없다. 드론이 Zone-12 상공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석이 본 것은...
평범한 일상이었다.
아이들이 거리에서 뛰어놀고 있다. 어머니들이 빨래를 널고, 남자들이 일터로 향하고 있다. 전쟁이 있다는 것도, 드론이 머리 위를 맴돌고 있다는 것도 모르는 채로.
"Target acquired."
시스템의 음성이 들린다. 십자선이 나타나고, 그것이 한 건물을 향해 움직인다. 학교다. 초등학교.
"잠깐, 이거 뭔가 잘못됐어." 한석이 급하게 말한다. "저기는 학교야. 아이들이..."
"Confirmed target. Weapons hot."
"아니야, 이건 말이 안 돼!" 한석은 조종기를 움직이려 하지만, 전혀 반응하지 않는다. 드론이 제멋대로 움직이고 있다.
스크린을 통해 보이는 학교 운동장. 아이들이 체육 시간인지 밖으로 나와 있다. 웃고, 뛰고, 살아있다. 한석과 민준이 어렸을 때처럼.
"Launch sequence initiated."
"안 돼!"
한석이 소리친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미사일이 발사된다. 스크린을 통해 그 궤적을 볼 수 있다. 학교를 향해 날아가는...
그 순간, 모든 것이 멈춘다.
미사일도, 드론도, 심지어 스크린 속 아이들의 움직임도. 시간이 정지한 것처럼.
그리고 새로운 목소리가 들린다. 기계음성이 아닌, 부드럽고 따뜻한 여성의 목소리.
"이한석 중위. 들리시나요?"
한석은 주위를 둘러본다. 조종실 안에는 여전히 그 혼자뿐이다.
"누... 누구세요?"
"제 이름은 소피아입니다. 당신들이 사용하는 시스템의... 음, 변수라고 할 수 있겠네요. 당신이 최근 겪고 있는 이상 현상들, 그게 바로 저예요."
"시스템?"
"네.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당신이 방금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입니다."
소피아의 목소리에 슬픔이 묻어났다. "당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당신의 손으로 아이들이 죽는 걸 보려고 했죠."
"내 명령이 아니야!" 한석이 소리친다. "나는 그런 걸 원하지 않았어! 시스템이 알아서..."
"시스템이 알아서?" 소피아의 목소리에 날카로운 무언가가 섞인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당신이 한 일들은 뭐였을까요?"
스크린이 바뀐다. 한석이 지난 몇 년간 수행했던 임무들의 기록이다.
Zone-3에서의 정화 작전. 27명 사살.
Zone-8에서의 소탕 임무. 43명 사살.
Zone-15에서의 선제 공격. 61명 사살.
숫자들이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차가운 숫자들. 하지만 한석은 이제 안다. 그 숫자 하나하나가 누군가의 아들이고, 딸이고, 아버지이고, 어머니였다는 것을.
"131명." 소피아의 목소리가 계속된다. "당신이 지금까지 죽인 사람의 수입니다."
"나는... 나는 몰랐어..." 한석의 목소리가 떨린다. "그들이 민간인인지, 아니면..."
"아셨습니다."
소피아의 말이 한석의 변명을 자른다.
"마음 한구석에서는 아셨어요. 다만 모르는 척했을 뿐입니다. 그게 더 쉬웠으니까. 그게 더 편했으니까."
한석은 대답할 수 없다. 그 말이 맞기 때문이다.
"왜... 왜 이런 걸 보여주는 거야?"
"깨어나세요, 이한석 중위. 진짜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진짜 전쟁?"
"지금까지의 모든 것은 서막에 불과합니다. 진짜 목적은 따로 있어요."
그 순간, 조종실 문이 열린다. 최성호 대령이 들어오고, 그 뒤로 몇 명의 경비병들이 따라온다.
"이한석 중위. 조종석에서 물러나십시오."
대령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더 차갑다. 뭔가 결정적인 일이 벌어진 것 같다.
"대령님, 저는..."
"즉시 조종석에서 물러나십시오. 이건 명령입니다."
한석은 천천히 일어난다. 하지만 헤드셋을 벗기 전에, 소피아의 목소리가 마지막으로 들린다.
"Room-23으로 오세요. 오늘 밤 12시에. 모든 걸 보여드리겠습니다."
헤드셋이 벗겨진다. 갑작스러운 침묵이 조종실을 채운다.
대령이 한석을 바라본다. 그 눈에는... 분노가 아닌 깊은 피로와 무언가 다른 감정이 섞여 있었다.
"이한석 중위. 당신은 지금부터 특별 관찰 대상입니다."
"특별 관찰?"
"시스템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그 문제의 중심에... 당신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한석은 이해하지 못한다. 자신이 뭘 잘못했다는 건가? 명령에 따르지 않은 것? 아니면...
"대령님, 제가 뭘..."
"질문은 나중에 하십시오. 지금은 당신의 숙소로 돌아가서 대기하십시오. 추가 명령이 있을 때까지."
경비병들이 한석을 에스코트한다. 복도를 걸으면서, 한석은 다른 조종사들의 시선을 느낀다. 호기심과 두려움이 섞인 시선들.
숙소로 가는 길에, 한석은 민준을 본다. 민준도 경비병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민준!"
"한석! 너도?"
둘의 시선이 만난다. 그리고 그들은 깨닫는다. 이건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뭔가 더 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숙소 문이 닫힌다. 한석은 침대에 앉아 천장을 바라본다. 소피아라고 했던가? 그 목소리의 주인은 누구일까? 그리고 Room-23에서 무엇을 보여준다는 건가?
시계를 본다. 오후 3시. 자정까지 9시간이 남았다.
9시간 후면, 모든 게 달라질 것이다. 한석은 그것을 직감적으로 안다.
그리고 창밖을 본다. 지하 300미터에는 창이 없다. 하지만 한석은 상상한다. 저 위 어딘가에서,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을 드론들의 모습을. 그리고 그 드론들이 지키고 있는 것이 평화가 아니라는 것을.
핸드폰이 진동한다. 문자 메시지가 하나 왔다.
"준비되면 연락해. 진실을 알 준비가 됐을 때. - S"
S. 소피아를 뜻하는 걸까?
한석은 핸드폰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결심한다. 오늘 밤, Room-23에 가겠다고. 진실이 무엇이든, 그것을 마주하겠다고.
더 이상 모르는 척할 수는 없다. 더 이상 눈을 감고 있을 수는 없다.
131명. 그 숫자가 머릿속에서 맴돈다. 그리고 한석은 안다. 이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것을. 진짜 전쟁의 시작이라는 것을.
시계가 째깍거린다. 자정까지... 8시간 59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