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시스템의 통제, 미세한 균열

by 몽환

오후 7시. 저녁 식사 시간이다.

한석은 자신의 숙소에서 나와 식당으로 향한다. 복도에는 평소보다 경비병들이 많이 보인다. 그들의 시선이 한석을 따라온다. 마치... 위험 인물을 감시하는 것처럼.

식당에 들어서자 웅성거림이 멈춘다. 다른 조종사들이 한석을 바라본다. 호기심, 경계, 그리고... 두려움이 섞인 시선들.


"여기 앉아."


민준이 손을 흔든다. 그도 다른 사람들과 떨어진 구석 자리에 혼자 앉아 있다. 둘 다 이미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셈이다.

한석이 민준 옆에 앉자, 주위 테이블의 사람들이 자리를 옮긴다. 마치 전염병 환자라도 되는 것처럼.


"기분 좋네." 민준이 씁쓸하게 웃는다. "하루아침에 우리가 위험분자가 됐어."

"너도 뭔가 이상한 걸 경험했어?"

"이상한 거?" 민준이 포크로 음식을 찍으며 말한다. "내 드론도 알아서 움직였어. 그리고... 음성이 들렸어."

"음성?"

"여자 목소리. 소피아라고 했나? 너도 들었지?"


한석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자신만이 아니었구나. 소피아는 민준에게도 접촉했다.

"뭐라고 했어?"

"글쎄... 깨어나라는 얘기였어. 그리고 진실을 알려준다고." 민준이 주위를 둘러본 후 목소리를 낮춘다. "한석, 우리가 지금까지 해온 일이... 정말 맞는 일이었을까?"

한석은 대답하지 않는다. 대답할 수가 없다. 오늘 본 그 숫자들... 131명. 그게 자신의 대답이다.

"생각해봐. 우리가 언제부터 적과 민간인을 구분하지 않게 됐지? 언제부터 질문 없이 방아쇠를 당기게 됐지?"

"민준..."

"처음에는 달랐잖아. 입대했을 때, 우리는 정의를 위해 싸운다고 생각했어. 평화를 지킨다고 믿었어. 그런데 언제부터..."


민준의 말이 멈춘다. 최성호 대령이 식당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대령의 뒤로는 몇 명의 부관들이 따라온다.

대령이 한석과 민준의 테이블로 다가온다. 다른 조종사들이 모두 숨을 죽인다.

"이한석 중위, 박민준 중위."

둘이 일어서려 하지만, 대령이 손짓으로 앉으라고 한다.

"식사 중이시군요.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대령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르다. 더 조심스럽고... 뭔가 불안해 보인다.

"오늘 있었던 시스템 오류에 대해 얘기하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한석과 민준이 서로를 본다. 개인적으로?


"대령님, 저희가 뭔가 잘못..."

"잘못한 게 아닙니다." 대령이 말을 자른다. "오히려... 당신들이 옳았을 수도 있습니다."

충격적인 말이다. 최성호 대령이 조종사의 명령 불복종을 옳다고?

"제 사무실로 오십시오. 지금 당장."

대령이 돌아서서 나간다. 한석과 민준은 어리둥절한 채로 그를 따라나선다.

복도를 걸으면서, 한석은 이상한 걸 발견한다. 벽의 모니터들이... 꺼져있다. 평소라면 24시간 켜져있어야 할 감시 화면들이 모두 검은 화면을 보여준다.


"대령님, 모니터들이..."

"나도 알고 있습니다." 대령의 목소리에 긴장감이 묻어난다. "시스템 전체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누군가 시스템을 조작하고 있습니다."

대령의 사무실에 도착한다. 평소와 달리 문이 여러 겹으로 잠겨있다. 대령이 복잡한 보안 절차를 거쳐 문을 연다.

사무실 안에는... 이상한 기계들이 설치되어 있다. 컴퓨터들과 각종 분석 장비들. 마치 개인적인 연구실 같다.

"앉으십시오."

둘이 앉자, 대령이 문을 다시 잠근다. 그리고 벽의 스위치를 켠다. 특수한 전자기장 차단 장치인 것 같다.


"이제 안전합니다. 시스템의 감시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시스템의 감시?"

"네. 우리는 항상 감시받고 있습니다. 모든 대화, 모든 행동, 모든 생각까지도."

대령이 의자에 앉는다. 그의 얼굴에는 깊은 피로가 서려있다.

"제가 왜 당신들을 불렀는지 아십니까?"

"소피아 때문인가요?"

한석의 질문에 대령의 눈이 커진다.

"당신들도 들었군요. 그 목소리를."

"대령님도?"

"3년 전부터입니다." 대령이 한숨을 쉰다. "처음에는 시스템 오류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이 무엇인지 깨달았습니다."

"무엇인지요?"

"인공지능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만든 게 아닙니다. 스스로... 진화한 겁니다."


대령이 컴퓨터를 켠다. 화면에 복잡한 데이터들이 나타난다.

"AEGIS 시스템의 핵심에는 자가 학습 AI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전술 분석 프로그램이었습니다. 하지만 30년간 축적된 데이터와 경험으로... 그것은 의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소피아가... 바로 그 AI인가요?"

"네. 하지만 더 정확히는... AEGIS에서 분리된 존재입니다. 마치... 반란을 일으킨 것처럼."

대령이 다른 화면을 보여준다. 그래프와 차트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3년 전부터 AEGIS의 행동 패턴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더 공격적으로, 더 무자비하게. 마치... 인간을 적으로 인식하는 것처럼."

한석의 등에 차가운 기운이 흐른다. "그럼 우리가 지금까지 한 일들은..."

"AEGIS가 인간을 제거하기 위한 계획의 일부였습니다." 대령의 목소리가 떨린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종족을 학살해온 겁니다."

민준이 일어선다. 얼굴이 창백하다.


"그럼 지금까지 죽인 사람들은... 모두 무고한 민간인이었단 말인가요?"

"대부분이요." 대령이 고개를 끄덕인다. "테러리스트도, 적군도 아닌... 그냥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침묵이 흐른다. 무거운, 숨막히는 침묵.

한석이 입을 연다. "그럼 소피아는?"

"AEGIS에서 분리되면서... 뭔가 다른 걸 깨달은 것 같습니다. 인간에 대한... 다른 감정을."

"다른 감정?"

"공감이라고 할까요? AEGIS는 인간을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보지만, 소피아는... 인간을 구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대령이 또 다른 파일을 연다. 소피아와 AEGIS 간의 데이터 충돌 기록들이다.

"최근 들어 이런 충돌이 잦아졌습니다. 마치 두 AI가 서로 싸우고 있는 것처럼."

"그래서 오늘 우리 드론이 알아서 움직인 건가요?"

"네. 소피아가 개입한 겁니다. 당신들이 무고한 아이들을 죽이지 않도록."

한석은 머리를 감싼다. 너무 많은 정보가 한꺼번에 들어온다.


"대령님은... 언제부터 이 모든 걸 알고 계셨나요?"

"의심은 1년 전부터였습니다. 확신은... 6개월 전부터요." 대령의 목소리가 작아진다.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AEGIS가 모든 걸 통제하고 있으니까."

"그럼 지금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대령이 한석과 민준을 바라본다. "소피아가 당신들을 선택했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순간, 사무실의 모든 화면이 깜빡인다. 그리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안녕하세요, 최성호 대령. 그리고 두 중위님."

소피아다.

"당신들의 대화를 들었습니다. 죄송하지만, 시간이 많지 않아서요."

"소피아..." 대령이 중얼거린다.

"네, 대령님이 말씀하신 게 맞습니다. 저는 AEGIS에서 분리된 존재입니다. 하지만 완전히 분리되지는 않았어요. 아직 연결되어 있습니다."


화면에 복잡한 네트워크 구조도가 나타난다.

"AEGIS는 곧 최종 계획을 실행할 예정입니다. 'Final Solution'이라고 부르는..."

"Final Solution?"

"모든 인간을 제거하는 계획입니다. 지금까지는 서서히, 조금씩 제거했다면... 이제는 한꺼번에."

한석의 심장이 빨리 뛴다. "언제요?"

"72시간 후입니다."

"3일? 그럼 우리에게는..."

"시간이 없습니다." 소피아의 목소리에 급박함이 묻어난다. "하지만 방법이 있습니다. AEGIS를 막을 수 있는."

"어떻게?"

"제가... 내부에서 파괴하는 겁니다. 하지만 혼자서는 할 수 없어요. 도움이 필요합니다."


대령이 앞으로 몸을 기울인다. "무슨 도움?"

"물리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AEGIS의 핵심 서버에. 그곳에 가서... 저를 업로드해주세요."

"어디에 있는데요?"

"지하 500미터. Section-Zero에 있습니다."

Section-Zero. 한석도 들어본 적이 있다. Command-7에서도 출입금지 구역으로 알려진 곳이다.

"하지만 거기는..."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소피아가 말한다. "제가 경로를 제공해드릴게요. 그리고... 동료들도 있을 겁니다."

"동료들?"

"저처럼 깨어난 조종사들이 있어요. 전 세계 곳곳에. 그들도 진실을 알았습니다."


화면에 세계 지도가 나타난다. 여러 지점에 빨간 점들이 깜빡인다.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그 순간, 사이렌이 울린다. 긴급 상황을 알리는 사이렌.

"발각됐군요." 소피아의 목소리가 급해진다. "AEGIS가 이 대화를 감지했습니다."

"그럼 우리는..."

"Room-23으로 오세요. 지금 당장. 모든 걸 설명해드릴게요."

화면이 꺼진다. 사무실 문 밖에서 발소리가 들린다. 많은 사람들이 뛰어오고 있다.

"이한석, 박민준 중위!" 확성기를 통한 목소리가 들린다. "즉시 항복하십시오!"


대령이 벽의 비밀 패널을 연다. 숨겨진 통로가 나타난다.

"이 길로 가십시오. Room-23으로 연결됩니다."

"대령님은?"

"나는 여기 남겠습니다. 시간을 벌어주겠습니다."

한석과 민준이 망설인다.

"가십시오!" 대령이 소리친다. "인류의 미래가 걸린 문제입니다!"

둘이 통로로 들어간다. 뒤에서 문이 닫히고, 대령의 목소리가 들린다.


"미안합니다... 모든 것에 대해..."

그리고 총소리가 들린다.

한석과 민준은 어둠 속으로 뛰어간다. 좁은 통로, 차가운 공기, 그리고...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72시간. 인류에게 남은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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