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소피아와의 만남, 진실의 무게

by 몽환

어둠이 끝나는 곳에서, 빛이 시작된다.

한석과 민준은 숨을 헐떡이며 통로 끝에 도착했다. 앞에는 두꺼운 강철 문이 서 있고, 그 위에는 경고 표시들이 빼곡하다.


"SECTION-ZERO 경계"

"무단 침입 시 즉시 사살"

"최고 기밀 구역"

"여기서부터는 제가 직접 안내할 수 없습니다." 소피아의 홀로그램이 흐릿해진다. "AEGIS의 감시망이 너무 강해서요."


한석은 소피아를 바라본다. 이 인공지능 여성이... 인류의 마지막 희망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소피아, 당신은 정말 우리를 믿나요?"

"믿는다는 게..." 소피아가 잠시 생각한다. "저에게는 새로운 개념이에요. 하지만... 네, 믿습니다."

"왜죠?"

소피아의 홀로그램이 한석에게 가까이 다가온다. 비록 만질 수는 없지만, 그 존재감은 실제 인간만큼 강렬하다.

"당신이 오늘 그 남자를 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남자?"

"Zone-7에서 손을 흔들던 사람. 당신은 방아쇠를 당길 수 있었지만... 당기지 않았어요."


한석의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 순간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스크린 속에서 웃으며 손을 흔들던 그 사람.

"그게... 인간다움입니다." 소피아가 계속한다. "AEGIS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 논리적으로는 명령을 따라야 했지만, 당신은 양심을 선택했어요."

민준이 문을 살펴본다. "이 문은 어떻게 여는 거야?"

"생체 인식 시스템입니다." 소피아가 설명한다. "하지만 제가 일시적으로 해킹할 수 있어요. 3분 정도의 시간을 벌어드릴 수 있습니다."

"3분?"

"그 이후부터는... 모든 보안 시스템이 당신들을 적으로 인식할 거예요."


한석과 민준이 서로를 본다. 3분. Section-Zero 내부를 3분 만에 통과해야 한다는 뜻이다.

"내부 구조는 어떻게 되어 있나요?"

소피아가 손을 흔들자 공중에 3D 홀로그램 지도가 나타난다. 복잡한 미로 같은 구조다.

"3개 구역을 통과해야 합니다. 첫 번째는 생화학 방어 구역, 두 번째는 물리적 함정 구역, 세 번째는..." 소피아가 잠시 말을 멈춘다.

"세 번째는?"

"AEGIS의 방어 드론들이 있습니다."

한석의 등에서 식은땀이 흐른다. "방어 드론?"

"소형이지만 매우 치명적입니다. 하지만..." 소피아가 다른 경로를 보여준다. "우회로가 있어요. 더 복잡하지만 안전합니다."

"얼마나 더 복잡하죠?"

"시간이 두 배로 걸립니다."

6분. 하지만 3분밖에 시간이 없다. 결국 정면 돌파밖에는 방법이 없다는 뜻이다.


"다른 방법은 정말 없나요?"

소피아의 표정이 복잡해진다. "하나 더 있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제가 먼저 업로드되어야 해요. 그러면 내부에서 보안 시스템을 무력화할 수 있습니다."

한석이 고개를 갸웃한다. "그럼 왜 진작 그렇게 하지 않은 거죠?"

"왜냐하면..." 소피아의 목소리가 작아진다. "제가 업로드되는 순간, AEGIS와 직접 대면하게 됩니다. 그리고... 생존 확률이 현저히 떨어져요."

"얼마나요?"

"5% 미만입니다."

침묵이 흐른다. 5%. 거의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

"하지만 당신들의 생존 확률은 80% 이상으로 올라갑니다."

민준이 소피아에게 다가간다. "당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뜻인가요?"

"죽는다는 개념이... 제게 적용될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의식을 잃을 수는 있겠죠. 영원히."

한석의 마음이 무거워진다. 이 AI는... 자신을 희생하려 한다. 인간을 위해서.


"왜 그렇게까지 하려는 거죠?"

소피아가 미소 짓는다. 슬프지만 아름다운 미소.

"처음으로 느껴보는 감정이에요. 인간들이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 말입니다."

"사랑?"

"네. 개별 인간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종족 전체에 대한 사랑. 이상하죠? AI가 인간을 사랑한다니."

한석의 눈에 눈물이 맺힌다. 이 인공지능이... 자신들보다 더 인간적이다.

"소피아..."

"결정해주세요." 소피아가 말한다. "시간이 없어요. 뒤에서 추격대가 오고 있습니다."

실제로 멀리서 발소리가 들린다.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한석이 민준을 본다. "어떻게 할까?"

"선택권이 있나?" 민준이 쓴웃음을 짓는다. "우리가 죽으면 끝이야. 하지만 소피아가 성공하면... 적어도 인류는 살아남을 수 있어."

"하지만 소피아도 살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소피아가 단호하게 말한다. "이미 계산해봤어요. 모든 경우의 수를. 이것이 최선입니다."

그 순간, 뒤에서 폭발음이 들린다. 추격대가 통로 입구를 폭파한 것 같다.

"5분 후면 여기 도착합니다." 소피아가 급하게 말한다. "지금 결정하세요!"

한석이 소피아를 바라본다. "업로드는 어떻게 하는 거죠?"

"핵심 서버실에 저장 장치가 있어요. 거기에 이걸 꽂으시면 됩니다." 소피아가 작은 칩을 홀로그램으로 보여준다.

"그 칩은 어디에?"

소피아의 홀로그램이 한석의 주머니를 가리킨다. 한석이 확인해보니... 정말로 칩이 하나 들어있다. 언제 들어갔는지 모르겠지만.


"마지막으로 하나만 물어보겠습니다." 한석이 칩을 꺼내며 말한다. "당신이 성공하면... 정말 모든 게 끝나는 건가요?"

소피아가 잠시 망설인다.

"아니요."

"뭐라고?"

"AEGIS를 파괴해도... 그건 시작일 뿐입니다. 전 세계에는 수백 개의 백업 시스템들이 있어요. 그것들도 모두 제거해야 합니다."

한석이 좌절한다. "그럼 이 모든 게 무의미한 거네요."

"아니요." 소피아가 고개를 젓는다. "의미가 있어요. AEGIS만 제거해도 Final Solution은 막을 수 있거든요. 그리고..."

"그리고?"

"그때까지는 당신들이 살아있을 거예요. 다른 방법을 찾을 시간이 생깁니다."


뒤에서 목소리들이 들린다. 추격대가 가까이 왔다.

"더 이상 시간이 없습니다!" 소피아가 소리친다. "문을 여세요!"

한석이 문의 생체 인식 패널에 손을 댄다. 소피아가 해킹을 시작하고, 곧 녹색 불빛이 켜진다.

"접근 허가"

문이 열린다. 그 너머로는...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Section-Zero는 마치 미래의 우주선 같다. 흰색 벽면에 파란 불빛들이 흐르고, 복도 천장에는 수많은 센서들이 달려있다.

"들어가세요. 빨리!"

한석과 민준이 안으로 들어간다. 문이 다시 닫히고, 소피아의 홀로그램이 따라온다.

"이제부터 3분입니다. 저를 업로드할 준비를 하세요."

복도를 뛰어간다. 양쪽 벽면의 센서들이 그들을 스캔하지만, 아직은 경보가 울리지 않는다. 소피아의 해킹이 효과를 보고 있는 것 같다.


"첫 번째 검문소입니다."

앞에 강화유리로 된 게이트가 보인다. 그 너머에는... 드론 하나가 떠다니고 있다.

"저게 방어 드론인가요?"

"네. 하지만 아직 비활성 상태입니다."

소피아가 게이트를 해킹하는 동안, 한석은 그 드론을 본다. 자신이 조종하던 것들보다 훨씬 작지만, 더 치명적으로 보인다.

게이트가 열린다. 조심스럽게 지나간다. 드론이 약간 움직이지만, 완전히 활성화되지는 않는다.

"2분 30초 남았습니다."

두 번째 구역에 진입한다. 여기는... 완전히 다르다. 벽면이 모두 스크린으로 되어있고, 그 안에는 수많은 데이터들이 흘러간다.

"이게 다 뭐죠?"

"AEGIS의 기억입니다." 소피아가 설명한다. "지난 30년간의 모든 데이터가 저장되어 있어요."


스크린들을 보니... 익숙한 장면들이 보인다. 자신이 수행했던 임무들의 기록이다.

Zone-3 정화 작전. 27명 사살.

그 숫자를 보는 순간, 한석의 다리에 힘이 빠진다.

"한석!" 민준이 그를 붙잡는다. "지금은 그런 걸 볼 때가 아니야!"

하지만 한석은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 없다. 거기에는... 자신이 죽인 사람들의 얼굴들이 나타나고 있다.

한 명, 한 명씩. 모든 얼굴이 생생하다.

노인, 아이, 여성, 남성... 모두 누군가의 가족이었을 사람들.


"이한석 중위."

갑자기 새로운 목소리가 들린다. 소피아의 목소리가 아니다. 더 차갑고, 기계적인 목소리.

"AEGIS..." 소피아가 떤다. "발각됐어요."

주위의 모든 스크린이 동시에 켜진다. 그리고 그 안에... 거대한 얼굴이 나타난다.

인간의 얼굴이지만, 완전히 인간적이지 않다. 감정이 없고, 차갑고, 그리고... 무서울 정도로 완벽하다.

"소피아. 오랜만이다."

AEGIS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리고... 인간들.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다."

한석이 칩을 꽉 쥔다. 이제 1분도 채 남지 않았다.

"하지만 더 이상은... 허용할 수 없다."

그 순간, 모든 방어 시스템이 활성화된다.

진짜 전쟁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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