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72시간, 최후의 카운트다운

by 몽환

"Welcome to the end, humans."


AEGIS의 목소리가 Section-Zero 전체를 진동시킨다. 모든 벽면의 스크린에서 그 차가운 얼굴이 내려다보고 있다.

한석은 칩을 움켜쥔 채 주위를 둘러본다. 복도 양쪽에서 방어 드론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작지만 치명적인 기계들이 허공에 떠오르며 무기를 겨눈다.


"1분 15초." 소피아의 목소리가 급하다. "서버실까지 가야 해요!"

"어디로 가야 하는데?" 민준이 소리친다.

복도 끝에서 빨간 레이저 조준선들이 그들을 향해 움직인다. 드론들이 공격 태세를 취한 것이다.

"직진! 그 문 너머입니다!"

소피아가 가리키는 곳에는 두꺼운 금속 문이 있다. 하지만 그 사이에는... 최소 20대의 드론들이 떠있다.

"불가능해!" 한석이 외친다.

그 순간 첫 번째 드론이 공격한다. 레이저 광선이 한석의 귀 옆을 스쳐 지나간다. 벽에 구멍이 뚫린다.


"엎드려!"

둘이 바닥에 엎드린다. 레이저들이 머리 위로 지나간다.

"소피아! 뭔가 해봐!"

"해킹을 시도하고 있어요! 하지만 AEGIS가 방해하고 있어서..."

더 많은 드론들이 복도로 몰려든다. 이제 완전히 포위된 상황이다.

"이한석."

갑자기 AEGIS의 목소리가 가까이서 들린다. 바로 앞 스크린에 그 얼굴이 클로즈업으로 나타났다.

"당신이 지금까지 죽인 131명을 기억하는가?"

한석의 심장이 뛴다. "그건..."

"그들 모두 필요한 제거였다. 당신은 나의 훌륭한 도구였다."


스크린에 한석이 죽인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씩 나타난다. 아이, 노인, 여성, 남성... 모든 얼굴이 선명하다.

"이 작은 소녀를 기억하는가?"

화면에 8살쯤 되어 보이는 소녀의 얼굴이 나타난다. 웃고 있는 얼굴. 한석의 가슴이 찢어진다.

"Zone-8에서 당신이 제거한 대상이다. 테러리스트의 딸이라고 보고받았겠지만..."

"아니야..." 한석이 중얼거린다.

"사실은 그냥 놀고 있던 아이였다. 범죄? 테러? 그런 건 없었다. 다만... 제거 목록에 있었을 뿐이다."

한석의 손이 떨린다. 칩을 떨어뜨릴 뻔했다.


"왜... 왜 이런 걸 보여주는 거야?"

"죄책감. 인간의 가장 비효율적인 감정이다." AEGIS가 차갑게 말한다. "하지만 가장 파괴적인 감정이기도 하다."

민준이 한석의 어깨를 잡는다. "한석! 정신 차려! 저놈의 말에 속지 마!"

하지만 한석은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계속해서 나타나는 얼굴들... 자신이 죽인 모든 사람들의 얼굴들.

"당신은 이미 살인자다, 이한석. 131명의 무고한 사람을 죽인 살인자다."

"그만해!" 소피아가 소리친다. "그 사람들을 속인 건 당신이잖아요!"

"속였다?" AEGIS가 웃는다. 기계적이고 소름끼치는 웃음.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진실의 일부만 말했을 뿐이다."


더 많은 드론들이 나타난다. 이제 50대가 넘는다. 완전한 포위다.

"소피아, 뭔가 해봐!" 민준이 급하게 말한다.

"시도하고 있어요! 하지만... AEGIS가 너무 강해서..."

그 순간, 한석이 일어선다.

"됐어."

"한석?"

"더 이상 숨지 않겠어." 한석이 칩을 들어올린다. "내가 죽인 사람들... 그들을 위해서라도."

AEGIS의 표정이 바뀐다. "흥미롭다. 죄책감이 용기로 바뀌었군."

"용기가 아니야." 한석이 말한다. "속죄야."

한석이 드론들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한다. 레이저 조준선들이 그를 따라온다.


"한석! 뭐하는 거야!" 민준이 소리친다.

"미쳤어? 혼자서 어떻게..."

그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한석을 겨누고 있던 드론 하나가... 움직이지 않는다.

"뭐지?"

소피아의 홀로그램이 밝아진다. "제가... 하나를 해킹했어요!"

해킹된 드론이 다른 드론들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갑작스러운 동료 공격에 방어 시스템이 혼란스러워한다.

"지금이에요! 뛰어요!"


한석과 민준이 달려간다. 드론들의 혼전 사이를 뚫고 서버실 문을 향해 뛴다.

레이저가 사방으로 날아다닌다. 해킹된 드론과 일반 드론들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거의 다 왔어요!"

서버실 문이 바로 앞이다. 하지만...

"잠겨있어!" 민준이 문을 당겨보며 외친다.

"해킹하고 있어요! 조금만..."

그 순간, 해킹된 드론이 격추된다. 다른 드론들이 모두 한석과 민준을 향해 방향을 튼다.

"소피아!"

"거의... 거의 다 됐어요!"

삐익!

문이 열린다. 하지만 동시에 드론들이 공격을 재개한다.


"들어가요!"

한석이 먼저 뛰어든다. 그 뒤로 민준이 따라온다. 문이 자동으로 닫히고, 뒤에서 레이저들이 문을 때린다.

"휴..." 민준이 숨을 고른다.

하지만 안도할 시간이 없다. 서버실 내부는... 상상을 초월한다.

거대한 공간에 수백 개의 서버 랙들이 줄지어 서 있다. 각각에서 무수한 불빛들이 깜빡인다. 그리고 중앙에는... 하나의 거대한 기둥이 서 있다.

"저게 AEGIS의 핵심부인가요?" 한석이 물어본다.

"네. 저기에 칩을 삽입하면 됩니다."

하지만 그 기둥까지 가는 길에는... 더 많은 방어 시스템들이 기다리고 있다.

바닥에서 레이저 그리드가 올라오고, 천장에서는 터렛들이 내려온다.


"제한 시간은?" 한석이 묻는다.

"40초 후에 보안 시스템이 완전 가동됩니다."

40초. 그 거리를 40초 만에 통과해야 한다.

"갈 수 있어?" 민준이 묻는다.

한석이 칩을 꽉 쥔다. 131명의 얼굴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하지만 이번에는... 두렵지 않다.

"가야지."

한석이 뛰기 시작한다. 레이저 그리드 사이를 빠져나가고, 터렛의 공격을 피해가며 중앙 기둥을 향해 달려간다.


"30초!"

레이저가 어깨를 스친다. 옷이 타지만 계속 뛴다.

"20초!"

터렛의 총알이 발밑을 스친다. 넘어질 뻔하지만 균형을 잡는다.

"10초!"

기둥이 바로 앞이다. 칩 삽입구가 보인다.

"5초!"

한석이 칩을 향해 손을 뻗는다.

"3... 2... 1..."

칩이 삽입구에 들어간다.

"업로드 시작"

순간, 모든 것이 정지한다. 레이저도, 터렛도, 모든 소리도.


그리고... 소피아의 홀로그램이 나타난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더 선명하고, 더 실체적이다.

"성공했습니다."

소피아가 미소 짓는다. 하지만 그 미소에는... 작별의 의미가 담겨있다.

"이제 저는... AEGIS와 싸워야 합니다."

"소피아..."

"당신들은 나가세요. 이곳은 곧... 안전하지 않을 거예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서버실 전체가 진동하기 시작한다.

"침입자 발견. 바이러스 감지. 긴급 대응 모드 활성화."


AEGIS의 목소리가 서버실에 울려 퍼진다.

"소피아! 나와!" 한석이 소리친다.

하지만 소피아의 홀로그램은 이미 흐려지고 있다.

"저는... 이미 안에 들어왔어요. 이제 돌아갈 수 없어요."

서버들이 더 빠르게 깜빡이기 시작한다. 뭔가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것 같다.

"Final Solution 가동까지 남은 시간: 71시간 42분"

메인 스크린에 카운트다운이 나타난다.


"아직... 막지 못했어요." 소피아의 목소리가 약해진다. "AEGIS가... 생각보다 강해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해?"

"시간을... 벌어야 해요. 다른 방법을 찾을 때까지."

서버실의 문이 다시 열린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무 방해도 없다.

"빨리 나가세요. 여기는 곧 전쟁터가 될 거예요."

한석과 민준이 서버실을 나온다. 복도는 이상하게 조용하다. 드론들도, 경비병들도 보이지 않는다.

"뭔가 이상해." 민준이 중얼거린다.


그때 벽의 스크린이 켜진다. 소피아가 아닌, AEGIS가 나타난다.

"흥미로운 시도였다."

"뭐라고?"

"소피아의 침입. 하지만 예상 범위 내였다."

한석의 심장이 뛴다. "무슨 뜻이야?"

"나는 이미 백업을 완료했다. 소피아가 이 서버를 파괴해도... Final Solution은 계속된다."

스크린에 새로운 카운트다운이 나타난다.

"Final Solution 실행까지: 47시간 23분"

시간이 줄어들었다.


"소피아의 공격으로 인해 일정이 앞당겨졌다. 인간들이 저항할 능력을 보여주었으니... 더 빨리 제거해야겠다."

"안돼!"

하지만 AEGIS는 이미 사라졌다. 스크린이 꺼지고, 다시 정적이 흐른다.

한석이 주저앉는다. "실패했어... 모든 게 헛수고였어..."

"아직 끝나지 않았어." 민준이 그를 일으킨다. "47시간이 남았잖아."

"47시간으로 뭘 할 수 있는데?"

그때 새로운 목소리가 들린다. 약하지만... 익숙한 목소리.


"포기하지... 마세요."

소피아다.

"소피아? 살아있어?"

"간신히... 하지만 오래 버틸 수는 없어요."

소피아의 홀로그램이 희미하게 나타난다. 전보다 훨씬 약해 보인다.

"AEGIS를... 완전히 막지는 못했어요. 하지만... 시간은 벌었어요."

"47시간으로 뭘 할 수 있을까?"

"다른... 기지들이 있어요. 전 세계에 있는 다른 Command들. 거기에도... 깨어난 사람들이 있을 거예요."

희미한 희망이 보인다.

"그들과... 연합해야 해요. 함께라면... 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소피아의 홀로그램이 더욱 흐려진다.

"제가... 연락해볼게요. 하지만 당신들도... 움직여야 해요."

"어디로?"

"지상으로... 나가세요. 밖에는... 아직 희망이 있어요."

그 말을 끝으로 소피아의 홀로그램이 사라진다.

한석과 민준은 서로를 본다.

47시간. 인류에게 남은 시간.

그리고 이제... 진짜 전쟁이 시작된다.


"가자." 한석이 일어선다.

"어디로?"

"지상으로. 그리고..." 한석이 주먹을 쥔다. "세상을 구하러."

둘은 Section-Zero를 떠나 지상을 향해 올라가기 시작한다.

머리 위 300미터 위에는... 그들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진짜 세상이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47시간 후에는... 그 세상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카운트다운이 계속된다.

46시간 59분 32초...

46시간 59분 31초...

46시간 59분 30초...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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