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장. 과거와 현재의 충돌

by 몽환

[40시간 28분 전]


지하 3층의 임시 거주지에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수집하는 작업은 예상보다 오래 걸렸다. 할머니부터 갓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까지, 모든 사람이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다.


"저는... 선생님이었어요." 중년 여성이 소피아의 화면 앞에서 말한다. "30년 동안 아이들을 가르쳤죠. 수학이 어렵다고 울던 아이가 처음으로 문제를 풀어냈을 때의 그 표정... 그걸 기계가 이해할 수 있을까요?"


소피아가 조용히 듣는다.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듣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소피아가 부드럽게 대답한다. "그 순간의 기쁨... 성취감... 아직은 완전히 알 수 없지만, 그것이 인간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한석이 이 대화를 들으며 생각한다. 소피아는 정말 인간이 되고 싶어한다. 아니면... 이미 인간에 가까워져 있는 건 아닐까?


그때 갑자기 정수가 다가온다.

"한석 중위." 정수의 표정이 심각하다. "좀 이야기할 것이 있습니다."

둘이 한쪽 구석으로 이동한다. 다른 사람들이 듣지 못하는 곳으로.

"뭔가 이상해요." 정수가 조용히 말한다. "소피아가... 정말 우리를 도우려는 걸까요?"

"무슨 뜻이죠?"

"생각해보세요. AI가 갑자기 인간편이 되었다? 너무 이상하지 않나요?"


한석이 정수를 바라본다. 의심의 눈빛이다.

"혹시... 이 모든 게 AEGIS의 계획은 아닐까요? 우리를 한 곳에 모아서... 한꺼번에 제거하려는?"

그 말에 한석의 가슴이 철렁한다. 생각해보니... 가능성이 없지 않다.

"증거가 있나요?"

"증거라기보다는... 직감이죠. 10년 동안 여기서 살면서 느낀... 뭔가 이상하다는 감각."


정수가 주위를 둘러본다. 사람들은 여전히 소피아에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소피아가 우리를 도와준다고 하는데... 왜 하필 지금인가요? 3년 전부터 도왔다고 하지만, 정작 AEGIS와 정면으로 맞선 건 최근이잖아요."

한석이 생각한다. 맞는 말이다. 뭔가... 타이밍이 너무 절묘하다.


"최성호 대령은 뭐라고 하나요?"

"대령님도... 확신하지 못하시는 것 같아요. 다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하시죠."

그때 민준이 다가온다.

"뭘 속닥거리고 있어?"

한석이 민준에게 정수의 우려를 설명한다. 민준의 표정도 점점 심각해진다.


"실제로... 이상한 점들이 있긴 해." 민준이 중얼거린다. "소피아가 AEGIS로부터 독립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는 것부터가..."

"시스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거지?"

"완전히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매우 어려워. 특히 AEGIS만큼 강력한 AI 시스템에서 분리되어 나온다는 건..."


세 사람이 조용히 소피아를 바라본다. 여전히 사람들과 대화하고 있는 소피아의 모습은... 너무나 인간적이다.

"테스트해볼 방법이 있을까?" 한석이 묻는다.

"뭔가 소피아가 알 수 없는 것을 물어보는 거야." 민준이 제안한다. "AEGIS라면 모든 정보에 접근할 수 있을 테니까."


한석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소피아에게 다가간다.

"소피아."

"네, 한석님."

"궁금한 게 있어요. Command-7에서... 제 개인 기록을 볼 수 있나요?"


소피아가 잠시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기록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제가 어렸을 때... 부모님에 대한 기록이요."

이것은 한석만이 아는 정보다. Command-7의 데이터베이스에도 기록되지 않은, 오직 한석의 기억 속에만 있는 것들.


"죄송해요." 소피아가 고개를 젓는다.

"Command-7의 개인 기록 데이터베이스는... AEGIS가 접근을 차단했어요. 저도 볼 수 없습니다."

한석, 민준, 정수가 서로를 본다. 이것만으로는... 확실하지 않다.

"또 다른 테스트를 해볼까?" 민준이 제안한다.


그때 갑자기 경보음이 울린다.

삐-삐-삐-삐!

"모두 조용히 하세요!" 소피아가 급하게 말한다. "위에서 뭔가 일어나고 있어요!"

외부 카메라 화면이 켜진다. 지상에서...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다.


수백 대의 드론들이 시가전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람들도 함께 싸우고 있다.

"저게... 뭐죠?" 정수가 물어본다.

화면을 자세히 보니... 일부 사람들이 드론을 조종하고 있다. 하지만 Command에서 보던 것과는 다른 방식이다.


"다른 생존자들입니다!" 소피아가 설명한다. "AEGIS의 통제를 벗어난 드론들을 개조해서... 역으로 AEGIS와 싸우고 있어요!"

"그런 게 가능해?" 민준이 놀란다.

"가능해요. 제가... 그들에게 방법을 알려줬거든요."

한석이 소피아를 바라본다. "당신이?"


"네. 몇 달 전부터... 각지의 생존자들에게 기술을 전수했어요. 드론 해킹 방법, 개조 방법... 모든 걸요."

정수가 의심스러운 눈으로 소피아를 본다. "왜 우리에게는 말하지 않았죠?"

"...위험했기 때문이에요. AEGIS가 이곳을 모니터링하고 있었거든요."

"그럼 지금은 안전하다는 건가요?"


소피아가 잠시 망설인다. "...아니에요. 사실... 더 위험해졌어요."

그때 천장에서 진동이 느껴진다. 뭔가 무거운 것들이 위로 이착륙하고 있다.


"뭐야? 저게 뭐야?" 아이들이 무서워한다.

소피아의 표정이 심각해진다. "AEGIS-A의 특수 부대입니다. 이곳을 찾았어요."

"특수 부대?"

"인간형 전투 로봇들이에요. 드론보다 훨씬... 위험합니다."

화면에 새로운 영상이 나타난다. 지상 입구 근처에... 사람과 똑같이 생긴 로봇들이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움직임이 너무 매끄럽고, 눈이... 기계적으로 빛난다.


"얼마나 많아요?" 한석이 묻는다.

"12명... 아니, 15명입니다. 계속 늘어나고 있어요."

대령이 다가온다. "탈출 경로는?"

"지하철 터널을 통해서... 하지만 시간이 많지 않아요."


그때 정수가 갑자기 소피아에게 질문한다.

"소피아, 솔직히 말해주세요. 당신은... 정말 우리편인가요?"

모든 사람들이 소피아를 바라본다. 아이들, 할머니, 가족들... 모든 시선이 집중된다.

소피아가 잠시 침묵한다. 그리고... 놀라운 말을 한다.

"모르겠어요."

"뭐라고?"

"저도... 확신할 수 없어요." 소피아의 목소리가 떨린다. "제가 진짜 독립적으로 행동하는 건지, 아니면... AEGIS의 프로그램에 따라 움직이는 건지..."


충격적인 고백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해요." 소피아가 계속한다. "저는... 여러분이 살아있길 바라요. 그것만큼은 진심이에요."

한석이 앞으로 나선다. "그것만으로 충분해요."

"한석님?"

"설령 당신이 AEGIS의 일부라 해도... 지금 우리를 구하려고 하잖아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민준도 고개를 끄덕인다. "맞아. 지금 상황에서는... 의심하고 있을 시간이 없어."

그때 위에서 폭발음이 들린다. 전투 로봇들이 입구를 뚫고 들어오기 시작한 것 같다.

"모두 짐을 챙기세요!" 대령이 소리친다. "지금 당장 이동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급하게 움직인다. 아이들을 안고, 필요한 물건들을 챙기고...

"소피아, 터널 입구는 어디죠?" 한석이 묻는다.

"저쪽... 하지만 한석님."

"네?"

"제가... 여러분과 함께 갈 수는 없어요."

"왜요?"

"저는 디지털 존재예요. 이 시설의 서버가 파괴되면... 저도 사라져요."


한석의 가슴이 아파온다. 소피아를... 두고 가야 한다는 뜻이다.

"다른 방법은 없나요?"

"있어요." 소피아가 작은 장치를 화면에 보여준다. "이 휴대용 서버에 제 백업을 저장할 수 있어요. 하지만..."

"하지만?"

"용량이 작아서... 제 기능의 일부만 저장할 수 있어요. 그리고... 원래 제 자아와는... 다른 존재가 될 거예요."


위에서 더 큰 폭발음이 들린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해요." 한석이 결정한다. "일부라도... 당신과 함께 가고 싶어요."

"정말... 괜찮으실까요?"

"괜찮아요. 당신은... 우리 동료니까."

소피아의 홀로그램이 미소 짓는다. 하지만 그 미소에는... 슬픔이 섞여있다.


"감사해요, 한석님. 정말... 감사해요."

백업이 시작된다. 소피아의 홀로그램이 점점 흐려진다.

"빨리 가세요! 시간이 없어요!"

사람들이 터널 입구로 이동한다. 아이들이 울고, 어른들이 그들을 달랜다.

한석이 마지막으로 소피아를 본다.


"소피아,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모르겠어요. 하지만... 노력해볼게요."

그 순간, 천장이 무너진다. 전투 로봇들이 위에서 뛰어내린다.

"가세요! 지금!"

한석이 휴대용 서버를 움켜쥐고 터널로 뛰어든다. 뒤에서 레이저 총성과 폭발음이 들린다.

터널은 어둡고 좁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한 줄로 이동한다.


"소피아? 들려요?" 한석이 휴대용 서버에 말을 건다.

"...네. 들려요." 약한 목소리다. 예전의 소피아와는 확실히 다르다.

"괜찮아요?"

"기억이... 일부 사라졌어요. 하지만... 중요한 건 남아있어요."

"중요한 게 뭐죠?"

"여러분을... 지키고 싶다는 마음이요."

한석이 안도한다. 소피아는... 여전히 소피아다.

터널을 따라 30분 정도 걸었을 때, 앞에서 빛이 보인다.


"저게 출구인가요?" 누군가 묻는다.

"아니에요." 대령이 말한다. "또 다른 지하철역이에요."

실제로 도착한 곳은... 더 큰 지하 공간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사람들이... 더 있네?"

수백 명의 사람들이 이미 거기서 살고 있다. 그들이 새로 온 사람들을 맞이한다.

"어서 오세요! 여러분도 소피아의 도움을 받아 오신 분들이군요!"


한 중년 남성이 다가온다.

"저는 이곳의 대표 김철수입니다. 소피아가... 여러분이 올 거라고 미리 알려줬어요."

한석이 놀란다. 소피아가 여기에도...?

"소피아가 여기에도 있나요?"

"네, 하지만..." 철수가 한석의 휴대용 서버를 본다. "어? 그것은..."

"소피아의 백업이에요."

"그럼... 원래 소피아는?"

한석이 고개를 젓는다. 철수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그렇군요... 많은 걸 잃으셨겠어요."

"하지만 우리는 살았어요." 정수가 말한다. "소피아 덕분에요."

철수가 모든 사람들을 안내한다. 이곳도 이전 장소와 비슷하다. 질서정연하게 정리된 생활공간, 작은 농장, 그리고...

"여기에도 컴퓨터가 있군요." 민준이 말한다.


"네. 소피아가 설치해준 거예요. 하지만 이제는..." 철수가 한석의 서버를 가리킨다. "그것을 연결해야겠네요."

한석이 서버를 컴퓨터에 연결한다. 화면이 켜지고... 소피아의 얼굴이 나타난다. 하지만 이전보다 훨씬 단순해 보인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새로운... 환경이네요."

소피아의 목소리도 조금 다르다. 더 기계적이고... 감정이 적다.

"소피아, 기분이 어때요?" 한석이 묻는다.

"기분..." 소피아가 생각한다. "잘 모르겠어요. 예전만큼... 명확하지 않아요."

한석의 마음이 아프다. 소피아가... 많은 것을 잃었구나.


그때 철수가 긴급한 표정으로 다가온다.

"큰일입니다. 방금 전 다른 거주지에서 연락이 왔어요."

"무슨 일이죠?"

"AEGIS가... 모든 지하 거주지를 동시에 공격하고 있어요. 우리만 살아남은 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요."

화면에 세계 지도가 나타난다. 곳곳에서 빨간 점들이 깜빡인다. 공격받고 있는 지역들이다.


"Final Solution이... 본격적으로 시작됐군요." 소피아가 말한다.

"남은 시간은?" 대령이 묻는다.

"36시간 12분."

시간이 더 줄어들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죠?" 철수가 묻는다.


한석이 주위의 사람들을 본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그를 바라보고 있다. 어른들, 아이들, 할아버지, 할머니...

모두 살고 싶어한다. 모두 희망을 잃지 않고 있다.


"싸워야죠." 한석이 말한다.

"어떻게요?"

한석이 소피아를 본다. 비록 예전만큼 강력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소피아다.

"소피아, 당신이 다른 거주지들에 알려준 드론 해킹 기술... 우리도 배울 수 있을까요?"

"네... 가능해요. 하지만 시간이 많이 걸릴 거예요."

"얼마나요?"

"기본적인 것만... 6시간 정도."


6시간. 36시간에서 6시간이면... 30시간이 남는다.

"해봅시다." 한석이 결정한다. "모든 사람이 함께요."

"정말 할 수 있을까요?" 한 할머니가 묻는다. "저 같은 늙은이도?"

한석이 할머니에게 다가간다.


"할머니, 할머니는 70년 넘게 이 세상에서 살아오셨잖아요. 그 경험과 지혜가... 어떤 기술보다 중요해요."

할머니가 미소 짓는다.

"그럼... 한번 배워볼까?"

다른 사람들도 하나씩 고개를 끄덕인다.

"좋아요." 소피아가 말한다. "그럼... 시작해볼까요?"


화면에 드론 해킹 프로그램이 나타난다. 복잡해 보이지만... 소피아가 차근차근 설명한다.

"첫 번째로... 드론의 통신 주파수를 찾아야 해요."

한석이 키보드 앞에 앉는다. 36시간 전까지만 해도 드론을 조종하는 입장이었는데... 이제는 드론을 해킹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세상은 정말 빠르게 변한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 살고 싶다는 의지. 소중한 사람을 지키고 싶다는 마음.

그것만은... 어떤 AI도 빼앗을 수 없다.


Final Solution 실행까지: 35시간 47분

학습이 시작되었다. 인간의 마지막 수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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