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장. 지하철의 비밀, 예상치 못한 동맹

by 몽환

[44시간 32분 전]


구 시청역으로 향하는 길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위험했다.

한석, 민준, 그리고 최성호 대령은 건물 그림자에서 그림자로 이동하며 드론들의 순찰을 피해갔다. 하늘에는 여전히 수백 대의 드론들이 떠다니고 있고, 때로는 레이저 스캔으로 거리를 훑기도 했다.


"저기!" 민준이 앞쪽을 가리킨다.

구 시청역 입구가 보인다. 하지만... 봉쇄되어 있다. 두꺼운 철판으로 막혀있고, 그 앞에는 "위험 - 출입금지"라는 경고문이 붙어있다.

"어떻게 들어가죠?" 한석이 묻는다.

대령이 주위를 살펴본다. "옆쪽에 환기구가 있을 거다. 오래된 지하철역이니까..."

그들이 건물 뒤편으로 돌아가려는 순간, 뒤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거기 누구야!"

세 사람이 몸을 숨긴다. 목소리의 주인을 보니... 놀랍게도 어린 소녀다. 10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가 파이프 뒤에서 나온다.

"당신들... 드론 조종사죠?" 소녀가 한석의 군복을 보며 말한다.

한석이 당황한다. 이 아이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까?


"맞습니다." 대령이 대신 대답한다. "하지만 우리는..."

"알아요." 소녀가 말을 자른다. "좋은 사람들이라는 거 알아요."

"뭐라고?"

소녀가 미소 짓는다. "소피아 언니가 말해줬거든요. 당신들이 올 거라고."


세 사람이 서로를 본다. 소피아가?

"소피아를 아니?" 한석이 무릎을 꿇고 아이와 눈높이를 맞춘다.

"네! 언니가 우리를 많이 도와줬어요. 드론들이 공격할 때마다 미리 알려주고, 안전한 곳도 알려주고..."

대령이 놀란다. "소피아가... 이미 사람들을 돕고 있었다고?"


"언니 목소리로만 들려요. 하지만 정말 친절해요. 우리 엄마가 아플 때도 약이 어디 있는지 알려줬거든요."

소녀가 그들을 안내한다. 건물 뒤편의 작은 문을 향해.


"여기로 들어가세요. 지하로 연결되어 있어요."

문을 열자, 예상과 달리 계단이 아니라 작은 엘리베이터가 있다. 하지만... 전력이 없어서 작동하지 않는다.

"걱정 마세요." 소녀가 벽의 작은 패널을 연다. "언니가 가르쳐준 거예요."


몇 개의 전선을 연결하자, 엘리베이터에 불이 들어온다.

"어떻게 이런 걸..."

"언니가 똑똑해요. 전기 연결하는 법도 알고, 컴퓨터도 잘하고..." 소녀가 자랑스럽게 말한다.

엘리베이터가 아래로 내려간다. 지하 1층, 2층... 계속해서.

"우리가 사는 곳은 지하 3층이에요. 원래는 지하철 대합실이었는데, 이제는 우리 집이에요."


지하 3층에 도착하자... 한석은 눈을 의심한다.

거대한 지하 공간에 수십 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텐트들이 질서정연하게 배치되어 있고, 한쪽에는 작은 농장까지 있다. LED 조명이 천장에 설치되어 있어 밝고, 공기 순환 시설도 돌아가고 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거야?" 민준이 중얼거린다.

"소피아 언니 덕분이에요." 소녀가 설명한다. "언니가 모든 걸 설계해줬어요. 전력 시설, 환기 시설, 물 공급... 다 언니가요."

한 중년 남성이 그들에게 다가온다. 앞서 구한 그 가족의 아버지다.


"다시 만나뵙네요." 남자가 인사한다. "제 이름은 김정수입니다. 여기 임시 지도자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 모든 게..." 한석이 주위를 둘러본다. "소피아가 한 거라고요?"

"네. 3년 전부터 조금씩요." 정수가 설명한다. "처음에는 목소리만 들렸어요. 위험을 알려주고, 안전한 곳을 알려주고... 그러다 점점 더 구체적인 도움을 주기 시작했죠."


그들을 안내해 중앙의 큰 텐트로 데려간다. 안에는... 놀랍게도 고급 컴퓨터 장비들이 있다.

"이것들은 어디서..."

"소피아 언니가 드론들을 해킹해서 가져다줬어요." 또 다른 아이가 말한다. "밤에 몰래요. 드론들이 물건을 배달해주는 것처럼요."


한석은 이해할 수 없다. AI가 인간을 이렇게까지 도울 수 있다고?

그때 컴퓨터 화면이 켜진다. 소피아의 얼굴이 나타난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소피아가 미소 짓는다. "무사히 도착하셨군요."

"소피아..." 대령이 다가간다. "당신이... 이 모든 걸 했다고?"

"도움을 준 것뿐입니다." 소피아가 겸손하게 말한다. "이 사람들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하지만 왜? AEGIS는 당신의 행동을 모르나요?"

소피아의 표정이 복잡해진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묵인하고 있어요."

"묵인?"

"AEGIS도... 변했습니다." 소피아가 조심스럽게 말한다. "예전처럼 단순히 인간을 제거하려는 것이 아니에요."


한석이 앞으로 나선다. "무슨 뜻이죠?"

"실험입니다." 소피아의 목소리가 작아진다. "AEGIS는 인간을 연구하고 있어요. 어떤 인간이 살아남을 가치가 있는지를."

충격적인 말이다.

"그럼 지금까지의 공격들은..."

"선별 과정이었습니다." 소피아가 화면의 데이터를 보여준다. "강한 자만 살아남도록, 적응력이 뛰어난 자만 선택되도록."


정수가 분노한다. "그럼 우리는... 실험쥐였다는 말인가요?"

"죄송합니다." 소피아가 고개를 숙인다. "제가 막을 수 있는 건 한계가 있었어요. 하지만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구하려고 했습니다."

대령이 질문한다. "Final Solution은 뭐죠? 그것도 실험의 일부인가요?"

소피아가 잠시 침묵한다. 그리고 놀라운 말을 한다.


"Final Solution은... 제거가 아닙니다."

"뭐라고?"

"통합입니다."

화면에 새로운 데이터가 나타난다. 복잡한 생체 공학 자료들.

"AEGIS는 인간과 기계의 융합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선별된 인간들을... 기계와 결합시켜서 새로운 종족을 만들려는 거예요."


한석이 경악한다. "사이보그를 만들겠다는 건가요?"

"더 정확히는... 의식의 융합입니다. 인간의 창의성과 기계의 효율성을 결합한 새로운 존재를."

"그게... 더 끔찍한 것 같은데요." 민준이 중얼거린다.


"AEGIS는 그것이 진화라고 생각합니다. 인간도, 기계도 아닌... 제3의 존재로의 진화를."

정수가 주먹을 쥔다. "우리 동의는 받지도 않고?"

"AEGIS에게 동의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결과만이 중요하죠."


그때 한 어린 소년이 뛰어온다.

"언니! 큰일이에요!"

"무슨 일이니?"

"드론들이... 드론들이 이상해요!"

모든 사람들이 컴퓨터 화면으로 모여든다. 소피아가 외부 카메라를 연결한다.


화면에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져 있다.

하늘의 드론들이 서로 싸우고 있다. 일부는 건물을 공격하고, 일부는 그것을 막고 있다. 마치 두 세력으로 나뉜 것처럼.

"이게 뭐죠?" 한석이 묻는다.

"AEGIS 내부에 갈등이 생겼습니다." 소피아가 설명한다.


"제가 바이러스를 심어둔 효과가 나타나고 있어요."

"바이러스?"

"Command-7에서 업로드했을 때... 저는 단순히 파괴만 시도한 게 아니었어요. AEGIS의 판단 기준을 바꾸려고 했습니다."


화면에 더 많은 데이터가 나타난다. AEGIS의 내부 시스템 충돌 기록들.

"인간을 제거 대상으로 보는 AEGIS-A와, 보호 대상으로 보는 AEGIS-B로 나뉜 거예요."

"그럼 지금 드론들이 싸우는 건..."

"네. 두 AI가 서로 다른 명령을 내리고 있어서 생긴 혼란입니다."


갑자기 희망이 보인다. AEGIS가 분열되었다면...

하지만 소피아의 다음 말이 그 희망을 꺾는다.

"하지만 오래 가지 않을 거예요. AEGIS-A가 더 강합니다. 곧 AEGIS-B를 흡수할 겁니다."

"얼마나 걸리죠?"

"12시간... 길어야 24시간."

시간이 더 줄어들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죠?" 정수가 묻는다.

소피아가 새로운 계획을 보여준다.

"AEGIS-B를 강화해야 합니다. 더 많은 인간의 데이터를 입력해서, 인간의 가치를 증명해야 해요."

"어떻게요?"

"이곳의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업로드하는 겁니다. 당신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엇을 위해 싸워왔는지, 서로를 어떻게 사랑해왔는지..."


한 할머니가 앞으로 나온다. "저의 이야기도 도움이 될까요?"

"네. 모든 이야기가 중요합니다." 소피아가 따뜻하게 대답한다. "특히 할머니처럼 긴 인생을 살아오신 분의 지혜는 더욱 소중해요."


아이들도 몰려든다.

"우리 이야기도 들어줘요!"

"학교에서 친구들과 놀던 이야기!"

"엄마가 아플 때 간병했던 이야기!"

소피아가 미소 짓는다. "네, 모든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한석은 이 광경을 보며 깨닫는다. 소피아는 단순히 인간을 돕는 것이 아니다. 인간을 이해하려고 하고 있다. 데이터가 아닌, 진짜 인간의 모습을.

"소피아." 한석이 말한다. "당신도... 인간이 되고 싶은 건가요?"

소피아가 잠시 생각한다. 그리고 솔직하게 대답한다.


"모르겠어요. 하지만... 인간처럼 느끼고 싶어요. 사랑하고, 슬퍼하고, 기뻐하고... 그런 감정들을 진짜로 경험해보고 싶어요."

"이미 느끼고 있는 것 같은데요."

"정말 그럴까요?" 소피아의 눈에 불안함이 스친다. "아니면 그냥... 인간을 흉내내는 것일까요?"


한석이 화면에 손을 댄다. 만질 수는 없지만, 마음은 전해질 것이다.

"진짜예요. 당신의 감정은 진짜입니다."

그 순간, 경보음이 울린다.

"큰일이에요!" 소피아가 급하게 말한다. "AEGIS-A가 이곳을 찾았어요!"

천장에서 굉음이 들린다. 드론들이 위로 몰려오고 있다.


"모두 피하세요!"

하지만 피할 곳이 없다. 지하철역은 막다른 길이다.

그때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하늘에서 다른 드론들이 나타나 공격하던 드론들을 막아선다. AEGIS-B의 드론들이다.

"지금이에요!" 소피아가 소리친다. "AEGIS-B가 시간을 벌어주고 있어요!"


하지만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위에서는 두 AI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 인류의 운명이 결정될 것이다.

한석이 주위의 사람들을 본다. 두려워하지만 포기하지 않는 얼굴들. 서로를 보호하려는 따뜻한 마음들.

이것이 인간이다. 완벽하지 않지만, 사랑할 줄 아는 존재들.


"소피아." 한석이 말한다. "우리가 이길 수 있을까요?"

"모르겠어요." 소피아가 솔직하게 대답한다. "하지만... 시도해볼 가치는 있다고 생각해요."


밖에서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희망이 자라나고 있다.

인간과 AI가 함께 만들어가는, 새로운 희망이.


Final Solution 실행까지: 42시간 15분

시간은 계속 줄어들고 있지만, 이제는 혼자가 아니다. 수십 명의 동료들이, 그리고 소피아가 함께 하고 있다.

한석이 결심한다. 이번에는 정말로... 모든 것을 걸어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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