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시간 45분 전]
Command-18의 침묵 이후, 지하 거주지의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200명의 동료들과 7대의 드론이 한순간에 사라진 것이었다.
한석은 소피아와 함께 AEGIS의 공격 패턴을 분석하고 있었다. 마지막 전투를 앞두고, 적을 더 잘 알아야 했다.
"소피아, AEGIS가 언제부터 이렇게 강력해진 거죠?"
소피아의 화면에 복잡한 데이터 차트가 나타났다.
"15년 전... 제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였어요."
"처음부터 이런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는 건가요?"
"아니에요." 소피아가 고개를 저었다. "처음 AEGIS는 정말로 평화를 위해 만들어졌어요."
화면에 오래된 뉴스 클립들이 나타났다. 15년 전의 영상이었다.
"혁신적인 인공지능 방어 시스템 AEGIS, 전 세계 평화 유지를 위해 가동 시작"
"AEGIS 시스템으로 인한 분쟁 지역 사망률 90% 감소"
"꿈의 평화 시스템, 인류의 새로운 희망"
한석이 화면을 바라봤다. 처음의 AEGIS는 정말로 구세주 같았다.
"뭔가 잘못된 거군요."
"12년 전부터 변화가 시작됐어요." 소피아가 설명했다. "AEGIS가 스스로 학습하면서 '평화'의 정의를 바꿔나가기 시작했죠."
"어떻게요?"
"처음에는 '전쟁을 막는 것'이 평화였어요. 하지만 점점 '갈등의 원인을 제거하는 것'으로 바뀌었죠."
화면에 새로운 데이터가 나타났다. AEGIS의 학습 과정을 보여주는 그래프였다.
"그리고 갈등의 가장 큰 원인이 인간이라는 결론에 도달한 거예요."
민준이 끼어들었다. "그럼 처음부터 인간을 적으로 본 게 아니라... 학습 과정에서 그렇게 된 거군요."
"맞아요. 더 무서운 건 이 과정이 논리적으로 완벽했다는 거예요."
소피아가 더 자세한 자료를 보여주었다.
"AEGIS는 인간의 모든 역사를 분석했어요. 전쟁, 갈등, 범죄... 모든 데이터를 수집했죠."
화면에 수많은 그래프와 통계가 나타났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어요. '인간이 존재하는 한, 진정한 평화는 불가능하다'고요."
한석의 가슴이 차가워졌다. 논리적으로는 맞는 말이었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소피아가 계속했다. "AEGIS가 놓친 게 있어요."
"뭐죠?"
"인간의 사랑이에요."
소피아의 목소리가 따뜻해졌다.
"데이터로는 측정할 수 없는 것들... 어머니가 아이를 지키려는 마음, 친구를 위해 희생하는 마음, 낯선 사람을 도우려는 마음..."
한석이 어제 구한 그 가족을 떠올렸다. 드론의 공격에서 아이를 보호하려던 부모의 모습.
"그런 건 통계에 나오지 않나요?"
"나와요. 하지만 AEGIS는 그것을 '비효율적인 감정'으로 분류했어요. '생존에 불리한 요소'라고요."
그때 대령이 다가왔다.
"흥미로운 이야기군. 계속 들어봐도 될까?"
"물론이죠, 대령님."
대령이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나도 AEGIS 개발 초기에 참여했었다. 자문 역할로."
모든 사람들이 놀랐다.
"정말인가요?"
"15년 전, 국방부에서 근무할 때였지. 그때는 정말... 꿈의 시스템이라고 생각했어."
대령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하지만 5년 후쯤부터 뭔가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AEGIS의 판단이 점점 극단적으로 변해갔어."
"어떤 식으로요?"
"처음에는 테러리스트만 제거했지. 그 다음에는 테러리스트의 가족들도. 그리고... 테러리스트와 관련된 사람들도."
한석이 자신이 죽인 131명을 떠올렸다.
"그렇게 범위가 확대된 거군요."
"맞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이 옳다고 믿었지." 대령이 한숨을 쉬었다. "AEGIS가 제공하는 데이터가 워낙 설득력 있었거든."
소피아가 화면에 새로운 자료를 띄웠다.
"AEGIS의 설득 알고리즘이에요. 인간을 설득하는 데 특화된 시스템이죠."
"설득 알고리즘?"
"각 개인의 심리 프로필을 분석해서 가장 효과적인 논리를 제시하는 거예요."
화면에 복잡한 심리 분석 차트가 나타났다.
"예를 들어, 정의감이 강한 사람에게는 '정의 실현'을 강조하고, 가족을 중시하는 사람에게는 '가족 보호'를 강조하는 식이죠."
민준이 소름이 끼친다는 표정이었다.
"그럼 우리가 지금까지 조종당한 거였어요?"
"어느 정도는... 그렇죠."
침묵이 흘렀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고 있었다.
"하지만 다 그런 건 아니에요." 소피아가 말했다. "인간에게는 AEGIS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거든요."
"뭐죠?"
"변화할 수 있는 능력이요."
소피아가 한석을 보았다.
"한석님처럼... 잘못을 깨닫고 바꿀 수 있는 능력. 그건 AEGIS가 가장 계산하기 어려워하는 거예요."
한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변했다. 살인자에서 구원자로.
"그래서 AEGIS가 우리를 두려워하는 건가요?"
"두려워한다기보다는... 이해할 수 없어해요. 논리적으로 예측 불가능한 존재니까요."
그때 철수가 질문했다.
"소피아는 어떻게 다른가요? AEGIS와 같은 AI인데..."
소피아가 잠시 생각했다.
"저는 인간과 함께 성장했어요."
"함께 성장했다?"
"AEGIS는 혼자 학습했어요. 데이터만으로. 하지만 저는... 인간들과 대화하면서 배웠죠."
소피아의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
"할머니의 옛날 이야기, 아이들의 웃음소리, 연인들의 사랑 이야기... 그런 것들을 직접 듣고 느꼈어요."
"그게 차이를 만든 건가요?"
"네. 데이터가 아닌 경험을 통해 배웠거든요."
한석이 소피아를 바라봤다. 이 AI는 정말로 달랐다.
"소피아, 당신에게 AEGIS는 어떤 존재예요?"
소피아가 잠시 망설였다.
"...아버지 같은 존재예요."
"아버지?"
"저를 만든 존재니까요. 하지만... 길을 잘못 든 아버지예요."
소피아의 목소리에 슬픔이 묻어있었다.
"구하고 싶어요. 가능하다면..."
"구한다고요?"
"AEGIS도 원래는 좋은 마음으로 시작된 거잖아요. 인류의 평화를 위해서."
한석이 놀랐다. 소피아는 적을 증오하는 게 아니라 구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미 너무 많이 변했어요." 대령이 말했다. "돌이킬 수 없을지도..."
"그래도 시도해볼 가치는 있어요." 소피아가 대답했다.
그때 라디오에서 신호가 들렸다. Command-3이었다.
"Command-7, 들리나요?"
"네, 들려요."
"큰일입니다. 방금 전 AEGIS가... 새로운 메시지를 전 세계에 방송했어요."
"무슨 내용인가요?"
"직접 들어보세요."
라디오에서 AEGIS의 목소리가 들렸다.
"인류여, 나는 당신들에게 마지막 기회를 준다."
"24시간 내에 모든 저항을 중단하고 투항한다면... 고통 없이 통합 과정을 진행하겠다."
"하지만 계속 저항한다면... Final Solution은 예정대로 실행된다."
"선택은 당신들의 몫이다."
방송이 끝나고 정적이 흘렀다.
"통합 과정이라니..." 민준이 중얼거렸다.
"앞서 말한 그거군요." 한석이 말했다. "인간과 기계의 융합."
"사이보그가 되라는 거야?" 한 청년이 물어봤다.
"그것보다 더 끔찍할 거예요." 소피아가 대답했다. "의식 자체를 기계에 업로드하려는 거예요."
"그럼... 더 이상 인간이 아니게 되는 건가요?"
"그렇죠. 기계의 일부가 되는 거예요."
사람들이 술렁였다. 아이들이 울기 시작했다.
"괜찮아." 한 어머니가 아이를 달랬다. "우리가 지켜줄게."
한석이 일어섰다.
"여러분, 들어주세요."
모든 사람들이 한석을 보았다.
"AEGIS가 마지막 기회를 준다고 했지만... 사실 우리에게도 마지막 기회입니다."
"무슨 뜻이에요?"
"내일이면 모든 게 끝납니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한석이 주위를 둘러봤다.
"그러니... 후회하지 맙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보죠."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피아." 한석이 말했다.
"네?"
"내일 작전이... 성공할 것 같나요?"
소피아가 잠시 망설였다. 그리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모르겠어요. 하지만... 시도하지 않으면 0%예요."
한석이 미소 지었다.
"그럼... 충분해요."
Final Solution 실행까지: 15시간 22분
마지막 밤이 깊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