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3. 19 월

by 홍석범

내가 영화에서 기억하는 것은 거의 (오로지) 분위기이다. 또한 그것은 대부분 단편적이고 영화의 줄거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이다. 그것은 영화의 메시지가 아닌 크로노토프이며, 미야자키 하야오가 말했듯이 하나의 가능성으로서의 다른 세계이다. 문득 내가 영화 속의 장면을 기억하는 방식이 여러 다른 장소와 시간들, 말하자면 그 속에 내가 직접적으로 존재했던 장소와 시간들을 기억하는 방식과 아주 유사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은 냄새나 어떤 소리, 빛의 움직임 같은 것들을 통해 불현듯 머릿속에 떠오르고 나는 그것을 다시 경험하는 것을 갈망하게 된다. 그러나 이 말은 이상하다. 나는 그것을 다시 경험하는 것을 갈망한다? 그것은 단순히 본다는 것 이상을 의미하는 듯 느껴진다─아마도 영화의 장면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방식과 관련이 있는. 엄밀히 말해 기억은 특정한 사물을 촉매제로 하여 떠오르는 것(사실 이것은 완전히 나의 추측일 뿐이다)이 아니라 무의식 속에서, 나의 뇌가 그것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순식간에 나타난다. 마치 내가 정말로 그곳에 존재했었던 것처럼 사실적이고 설득력 있는 방식으로.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영화에서 우리가 얻게 되는 것은 다른 세계에서 실제로 잠깐 살아보는 것이며, 이것은 허구가 아니다.


그러나 동일한 방식으로 나는 몇몇 책-이야기들 역시 떠올린다. 이 사실은 시공간이 우리에게 파악되는 방식에 대해 무엇인가를 말해주는 것처럼 보인다.






2015. 3. 19



어떤 예기치 않은 각성(깨달음의 의미가 아닌 변화가 있었다는 의미에서)을 통해 사물을 처음 보는 듯한 방식으로 바라보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그것은 일종의 발작적인 생리 현상과 같이 일어난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그 사실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고, 새롭게 획득한 제3의 눈을 통해 천천히 사물을 바라본다(약간은 놀라움에 빠진 상태로). 우리는 그 눈을, 지금까지 전혀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우리에게 있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눈꺼풀을 깜빡인다든지 하면서 조금씩 사용한다. 또한 그 인식은 우리가 약간은 부유하고 있는 것처럼 느끼도록 한다. 말하자면 사물들의 고정관념 위에서. 이것은 아주 기묘한 경험이다. 실제로 나는 그 천장의 구석을 올려다보면서, 점점 그 인식이 내 눈을 다시 빠져나가는 것을 느낌과 동시에 그 모서리가 어두운 회색으로 돌아왔을 때, 침대 위에 누운 상태로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정말로, 내가 지금 여기에 이렇게 누워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기이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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