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3. 27 화

by 홍석범

지금의 이 상황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로 하여금 이 길을 계속 가도록 하는 것은 표현에 대한 어떤 막연한 믿음이다.


건축물은 목표가 아니다. 목표는 그것을 통해 표현이 되는 것이다.






2015. 3. 27



어떤 단어에 자리를 만들어주기 위해 문장을 창작하는 것은 바로크적인 행위이다. 그러나 단어들은 그런 방식으로밖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현란하고 수사적인 장치들 사이로.


문학에 대한 보르헤스의 관점 자체가 네오리얼리즘의 시작이다. 오늘 그 시인의 연보를 살펴보던 중 그가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과 올란도를 번역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피에르 메나르가 세르반테스가 되었듯이 ─ 모든 것은 이미 쓰였고 모든 사람들은 다시 모든 것을 쓰므로 ─ 그가 그녀의 펜으로 자기만의 방을 다시 쓴 것을 읽어볼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보르헤스를 읽으면 창조력은 곧 파괴력임을 이해하게 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신을 떠올리게 된다. 이것은 정말로 비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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