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5. 12 토

by 홍석범

일기를 쓸 시간이 없었다. 우리는 많은 것을 하고 있다.



월요일에 수업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엄마는 새로 산 커다란 냄비에 닭볶음탕을 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문을 열었을 때 집 냄새가 났고 내가 그 말을 하자 엄마는 좋아했다. 그 밖에도 돼지고기와 오이, 감자, 양배추 등으로 다양한 밑반찬들을 잔뜩 만들어 놓았다.


잘츠부르크에 다녀온 뒤 백조의 호수와 조성진 독주회를 관람했다. 존 크랑코의 안무는 투박한 듯하면서도 시적으로 느껴지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백조들의 대열이 만들어내는 기하학적이고 일사불란한 움직임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했다. 알리시아 아마트리아인에게 완전히 반했다. 그녀가 춤을 출 때 그녀의 몸은 군더더기가 전혀 없는 완벽한 모양이었다. 그것이 발레 형식의 본질일 것이다. 마지막 막에서는 희미한 조명이 극적이고 가깝게 느껴졌다. 극장에서는 처음 느껴보는 친밀감이었다.


조성진이 연주한 베토벤 8번은 녹음된 것보다 조금 아쉬웠지만 쇼팽 3번 마지막 악장을 들을 때는 소름이 돋았다. 두 번째 앙코르곡이 끝났을 때 누군가 브라보를 외쳤다.


오늘 아침 숲속을 걷는 동안 엄마는 아주 즐거워했다. 우리는 생태공원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몇 가지 시설물들의 사진을 찍었다. 한 번 나는 새집 밑에 가 서 있어야 했다. 나무 위로 비치는 나뭇잎들의 그림자가 선명했다. 도시락을 싸서 다시 놀러 오기로 했다.






2015. 5. 12



도서관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 후 일기를 한 달 반 정도 쓰지 못했다. 편지를 제외하고는 이야기의 모든 부분을 순서대로 썼다. 그렇게밖에는 할 수 없었다. 중반부부터 이미 마지막 장면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끝이 되어서야 실제로 쓸 수 있었다. 이 사실은 내 설계 방식과 글쓰기 방식이 근본적으로 서로 반대되는 메커니즘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야기를 쓰면서 깨닫게 된 몇 가지 사실들을 여기에 써보려고 했지만 도통 그렇게 할 수 없었고 재빨리 그 깨달음을 다시 이야기 속으로 던져 넣어야만 했다. 이번에 나가면 타이핑을 시도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 장면을 쓴 직후 굉장히 큰 허탈감과 의욕상실 증상을 느꼈다.


5일부터 돈키호테를 읽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2018. 4. 29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