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 마지막 수업 후에 니키타와 팔라스트에서 맥주를 마셨다. 우리는 반 리터 두 잔을 챙겨 길바닥 아무 데나 자리를 잡고 앉았다. 금세 우리 주변도 사람들로 가득 찼다. 그는 아버지가 군인이었기 때문에 나의 군생활에 대해 궁금해했다. 그는 러시아에서는 6살이 되면 처음 학교에 가 가장 먼저 총을 조립하고 다시 분해하는 것을 배운다는 약간 믿기지 않는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멕시코의 아침 드라마 따위의 것들에 대해 시시한 말들을 주고받으며 자정까지 그곳에 있었다. 문득 L과 처음 만나 끝없이 얘기를 나눴던 저녁이 떠올랐다. 그리고 아마도 그날과 같은 경험은 다시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루 종일 쏟아지는 비를 구경했다. 저녁을 먹고 조금 잔 뒤 지금은 새벽 1시다. 귀뚜라미와 개구리 소리가 들리도록 창문을 조금 열어두었다. 오랜만에 맑은 정신으로 노트를 펴고 책상 앞에 앉아 있다. 부분과 전체를 조금 읽었다. 비는 그쳤지만 바깥공기는 축축하고 깊은 밤의 선선함이 베일처럼 방 안으로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