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8. 6 월

by 홍석범

인간이란 대체 어떤 존재인가 자문하는 것은 증명해야 하는 의무를 가지고 노력할 일이 아니다. 인간이 이성적 존재인 이유는 만물의 영장이어서도 아니고 신이 로고스를 빌려주어서도 아니다. 인간은 특별하지 않다. 최근 들어 인간의 전유물이라고 여겨졌던 추상, 언어, 스스로를 인지하는 능력 등이 전부 생물학적 뇌의 작용으로 설명 가능해졌다. 새가 날개를 가지고 태어나 날 수 있듯이, 인간도 이성을 가지고 태어나 사고할 수 있을 뿐이다.


지각 세계의 영역을 가장 근원적인 철학 탐구의 영역으로 정식화한 메를로-퐁티의 접근 방식은 유독 겸손했다. 인간 정신의 절대적인 우월성을 포기한 그는 우선 인간이 어떻게 이 세계를 체험하고 살아가는가를 다른 유기체들과 같은 차원에서 탐색한다. 아메바나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모두 하나의 생물종이다. 생물은 당연히 자신의 환경을 갖는데, 이 말은 생물이 주위의 다른 것들과 투쟁하고 화합하는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는 뜻이다. 아메바는 자신의 환경 세계가 자신의 생존에 불리할 때 그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옮겨간다. 이때 아메바는 움직여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몸을 길쭉하게 만들어 끝을 고정시킨 뒤 나머지 몸을 그 끝을 향해 모으는 몸-다리 기능, 즉 위족 기능을 사용한다. 인간도 아메바의 위족과 같은 기능을 발휘하는데, 이것이 바로 정신의 발현이다. 인간은 자신의 환경 세계가 자신의 실존을 실현하는 데 불리할 경우 자신의 몸을 늘어뜨려 정신을 만들어 낸다. 실존을 실현하기 위해 우리가 던지는 물음에는 사유와 반성이 깔려 있다. 정신-사유-반성은 인간이 일구어 온 생물종으로서의 한 기능이다.






2015. 8. 6



도덕을 추적해야만 하는 이유.


우리가 말하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간이다. 이 말은 종종 아리스토텔레스의 작품으로 기술되지만 그가 말한 사회적 동물은 사실 정치적 동물이다. 그리스 시민 계층에게 사회 생활이란 곧 정치 활동이었다. 현대의 우리가 사회적 동물이란 표현을 이해하는 방식은 스피노자의 철학에서 태동했다. 인간이란 언제나 본질적으로 인간들 사이의 인간이며 도덕은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간의 교리다. 그러나 도덕은 사실상 특정 교리가 아닌 인간의 인식 자체를 이루고 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사회 속에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도덕에 의해 개인들은 집단의 기능이 되고, 또 오로지 기능으로서만 자신에게 가치를 부여하도록 인도된다. 도덕성이란 개인들 속의 무리 본능이다. (192)


숲에서 홀로 태어난 인간에게 도덕은 불가능하다. 그는 이미 그 형식 안에 존재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교미 직후 수컷 사마귀를 잡아먹는 암컷 사마귀를 비도덕적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것은 필연적이며 우리는 그것을 자연이라고 부른다. 인간에게 태곳적부터 체화되어온 자연은 다름 아닌 바로 인간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의인화하며 오직 대명사로서의 인간에 의해서만 인식한다. 그리고 그 근원적 오류들을 지닌 바로 그것의 연륜, 그것의 체화가 인식의 힘이 된다. 우리는 모든 것을 도덕적으로 인식한다.


도덕적 체험 외에 다른 체험은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감각 지각의 영역에서도 그러하다. (191) 유기체의 보다 높은 모든 기능은, 즉 감각적 지각과 모든 종류의 감성은 태곳적에 체화된 저 근원적 오류들을 지닌 채 작동하고 있다. (186)


도덕은 하나의 행동양식, 어떤 태도, 도리 혹은 가치관을 지시하지 않는다. 그것은 필연적이 된 인간의 형식 그 전체의 이름이다. 그 안에서 선과 악의 개념이 태어났다. 도덕이 바로 인간 자체라면, 극도로 정밀하게 의인화된 자연으로서의 인간의 본질이라면, 우리는 새로이 발견되고, 새로이 구원된 자연을 통해 우리 인간을 자연화해야만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2018. 8. 5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