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8. 23 목

by 홍석범

내일 R이 도착한다. 오후 내내 비가 왔고 창문을 열어둔 채로 청소를 했다. 그동안 여기저기를 다니며 모아둔 엽서들과 입장권들, 팸플릿들을 정리하고 바닥을 걸레질했다. 비가 거세지면서 천둥이 치기 시작했다. 시원한 바람과 좁쌀만 한 물방울들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슈만 교향곡 4번. 기찻길 맞은편 창고의 슬레이트 지붕 위를 바람이 훑고 지나가면서 빗줄기들이 서로 부딪혔고 물이 계속 흘러내리는 경사면 위로 하얀 레이스처럼 바람의 흔적이 나타났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2015. 8. 23



새로운 일기장. 사전을 만드는 사람들이라든지 화산이 폭발하기만을 기다리는 형제에 대한 이야기 속에는 작고 소소한 것들이 들어 있다. 그것은 결국 살아가는 이야기이고 가장 작은 것들까지도 전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일본 영화 특유의 소박하고 차분한 정서. 이때 기이하게도 많은 삶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모두에게 각각 특별한 방식으로 주어져 있다는 사실은 큰 위안이 된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하루 종일 계획되어 있던 비행은 대부분 취소되었다. 일종의 의무감 같은 것을 느끼면서 모세오경 요약본을 빠르게 읽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구약이 신을 철학적이고 관념적인 관점이 아닌 철저히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관점에서 이해한다는 것이다. 이 사회적 관점이라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신은 관조하는 신이 아닌 행동하는 신임이 지속적으로 강조된다. 스스로를 질투가 많은 신이라고 칭하는 창조자. 신이 모든 것을 해결하므로 인간들은 무지하고 무능력한 상태로 남아 있다. ‘그’가 이집트의 모든 초태생들을 살해했을 때, 이스라엘이 한 것은 죽음의 천사를 피해 고작 자신들의 문짝에 짐승의 피를 뿌린 것뿐이었다.


‘한 책의 민족’으로서의 이스라엘. 구약은 그들의 기구한 민족사가 빈곤과 고난을 견뎌내고 인류에 공헌한 최고의 정신이다. 그들은 그들 존재의 도상을, 말하자면 그들의 도덕을 유일신으로 환원시켰다. 그들은 정녕 그토록 마취적이고 절대적인 형이상학이 필요했던 것일까? 야훼는 모세의 입속에 말을 넣어주었지만 파라오의 고집 역시 의도했다. 인간사가 전부 신에게 귀속되는 것이라면 그것은 유일신론이 아닌 범신론으로 귀결되어야 할 것이다.


유대인 철학자 아브라함 J. 헤셸이 안식일에 대해 했던 말을 적어둔다.


안식일은 삶이 신성하게 회복되는 시간의 거룩함이다. 안식일은 공간보다 시간을 축하하는 데 있다. 한 주간의 엿새를, 우리는 공간의 사물이 다스리는 체제 밑에서 산다. 안식일에 우리는 시간의 거룩함에 자신을 조절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안식일은 우리가 시간 속에서 영원한 것을 나누는 날, 창조의 결과에서 창조의 신비로 돌아서는 날, 창조의 세계에서 세계의 창조로 돌아서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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