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8. 25 토

by 홍석범

토요일이라 길 한복판에는 꽃과 과일시장이 열렸고 비가 조금씩 내렸다. 미술관에 들렀다가 점심으로 슈바이네학센을 먹었다. 벤츠 박물관 내부는 딱 상상했던 정도였다. 둘 모두 차나 기계에 별 관심이 없어 한 시간 정도 둘러보고 나왔다. 조금 지친 상태로 장을 본 뒤 집으로 돌아왔다. 맥주를 마시면서 앞으로 2, 3년 안으로 과연 R이 결혼을 하게 될지 얘기했다.






2015. 8. 25



어떠한 관찰 방법과 훈련도 항상 주의 깊게 살피는 자세를 대신해주지는 못한다. 볼 가치가 있는 것을 그때그때 놓치지 않고 보는 훈련에 비하면 아무리 잘 선택된 역사나 철학이나 시의 공부도, 훌륭한 교제도, 가장 모범적인 생활 습관도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다. 당신은 단순한 독자나 학생이 되겠는가, 아니면 제대로 보는 사람이 되겠는가? 당신 앞에 놓인 것들을 보고 당신의 운명을 읽으라.


… 이런 시간들은 내 인생에서 공제되는 시간들이 아니고 오히려 나에게 할당된 생명의 시간을 초과해서 주어진 특별수당과도 같은 것이었다. 나는 푸리족 인디오처럼 살았다. 이 사람들은 어제와 오늘과 내일을 나타내는 데 한 가지 말밖에 없다. 그래서 어제를 의미할 때는 등 뒤를 가리키고, 내일은 자기 앞을, 그리고 오늘은 머리 위를 가리켜서 뜻의 차이를 나타낸다.


내 모든 살림 도구가 풀밭 위에 나와 집시의 봇짐처럼 한 무더기로 쌓이고, 내 삼각 탁자가 책과 펜과 잉크가 그냥 놓인 채로 소나무와 호두나무들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유쾌한 일이었다. 그 물건들도 밖으로 나온 것을 좋아하는 것 같았고 다시 안에 들어가는 것을 싫어하는 것 같았다. 이 물건들 위에 햇빛이 비치는 것을 본다든가, 바람이 그 위로 거리낌 없이 스쳐가는 소리를 듣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


아무리 우리 눈에 익은 물건이라도 집 밖에 내놓으면 집 안에 있을 때와는 아주 색다르게 보이는 법이다. 바로 옆의 나뭇가지에는 새 한 마리가 앉아 있고, 보릿대국화는 탁자 밑에서 자라고 있고, 검은 딸기의 넝쿨은 그 탁자의 다리를 휘감고 있다. 주위에는 솔방울과 밤송이 껍질들, 딸기 잎사귀들이 흩어져 있다. 그러고 보니 이러한 영상들이 탁자나 의자, 침대 같은 가구에 새겨진 것은 바로 이와 같은 경로에 의해서가 아닐까 싶었다. 즉, 이 가구들이 한때는 그런 자연 속에 놓여 있었다는 이유로 말이다.


월든, 소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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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지난 태풍이 가까워지고 있다고 한다. 아침부터 비가 내리고 있고 선선해진 공기 탓에 기분이 상쾌하다. 활주로 맞은편 산등성이 위로 엷게 안개가 퍼져 있다. 사방이 회백색의 빛깔이다. 유독 라인 한가운데의 초록만이 눈에 띄게 살아났다. 그 위로 까만 점 같은 새들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새들의 경로는 작은 곡선들과 화살처럼 길어지는 직선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차고 옆에 포터 트럭과 봉고차가 세르반 사부의 그림 속에서처럼 서 있다. 사물들은 조용하고 마음은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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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간 집중해서 월든을 읽었다. 소로우의 담담하면서도 유머러스한 문체가 마음에 들었다. 그가 놀랍도록 단언적인 태도로, 그러나 겸손하게 썼던 그의 신념들에서 힘과 용기를 얻었다. 소로우가 썼듯 우리의 어휘들이 지닌 휘발성의 진실은 잔재적인 표현의 부적당함을 끊임없이 폭로해야 한다.


침대로 들어가기 전 산책을 했다. 비는 그쳤고 사방이 조용했다. 구름 뒤에 있는 달빛이 멀리 알 수 없는 윤곽들을 드러냈다. 개구리와 귀뚜라미 소리가 들렸다. 순간적으로 강한 바람이 등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매몰차고 시원하게 내 몸을 통과해 지나갔다. 그것은 아직 세계에 의해 쪼개지지 않는 원시 상태의 바람 덩어리 같았고 나는 마치 바람들이 태어나는 넓은 대지 위에 홀로 서 있는 느낌이었다. 자유롭고 신비로운 밤. 검은 나무들이 흔들리는 소리를 들으며 그 너머 깊숙한 숲속 어딘가에서 직접 쌓은 벽난로 앞 직접 깎은 나무 의자에 앉아 호메로스를 읽고 있는 한 청년을 상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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