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티켓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기차를 타는 바람에 하이델베르크로 가는 길에 추가 요금을 물었다. 11시쯤 역에 도착했는데 날씨가 아주 좋았다. 구시가지 쪽으로 천천히 걸어 올라가는 길에 프린츠혼에 들렀다. 그곳은 정신의학 기관들의 연구 사료들과 작업 아카이브로, 하이델베르크 대학 병원의 정신의학과 건물에서 불안과 건축이라는 주제로 열린 전시가 마침 오늘까지였다. 건축과 공간을 표현한 정신병 환자들의 다양한 그림들을 볼 수 있었다. 전시 공간과 연구동 건물은 직각으로 꺾어지는 주랑으로 연결되어 있었는데 그 앞의 정원은 어딘지 모르게 통제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고 약간 음산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곳을 가로질러 조금 걸어나가자 바로 네카강이 나왔다. 우리는 강가를 따라 이십 분 정도 걸었다. R은 반대편 산 중턱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그림 같은 붉은 지붕 집들을 보며 좋아했다.
중앙의 큰길에만 관광객들이 바글바글했고 한 블록만 안으로 들어가도 금방 한산해졌다. 일종의 산악 열차를 타고 성까지 올라갔다. 거대한 폐허는 근사했지만 사진으로 보고 기대했던 만큼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테라스에서 구시가지를 내려다보고 있는데 사람들이 자꾸 사진을 찍어야 된다며 옆으로 비켜달라고 했다. 성벽의 붉은 돌들과 나무들의 청록색이 잘 어울렸다. 다양한 수종이 있었고 햇살을 받아 가끔씩 황금빛으로 빛났다. 멀리 시계탑의 꼭대기 위로 유유히 지나가는 패러글라이더가 보였다. 바람이 많이 불어 생각보다 선선했다.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 돌아보니 페르난다와 헬렌이었다. 헬렌은 이번 겨울에 하이델베르크에서 인턴을 하게 되어 방을 보러 왔다고 했고 페르난다는 그녀를 따라온 것이라고 했다.
광장으로 내려와 볕이 드는 자리에 앉으니 기분 좋게 따듯했고 몸이 노곤해졌다. 립과 소시지, 독일식 만두가 조금씩 들어 있는 메뉴와 맥주를 주문했다. 멀리서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소리와 분수의 물소리가 들렸다. 그것들을 전부 머릿속에 각인시켜두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다. 그 장소는 정말로 광장 특유의 모든 특징들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어제 비가 온 뒤로 날씨가 맑게 갰다. 하룻밤 새 여름이 쇠하고 하늘이 눈에 띄게 높아졌다. 열기 속에서 쪼그라들어 있던 사물들은 본래의 고상한 형상으로 다시 이완되기 시작했고 사방은 점점 더 멀리 뻗어나가고 있다. 문을 열자 좁은 통로 내부로 상쾌한 산들바람이 불어왔다. 주변이 약간 바란 듯한 빛깔들로 반짝거렸고 눈이 부셨다. 얼마 전 도색을 마친 라인의 오두막들 앞으로 노란색과 검은색의 체크무늬 순찰차가 지나갔다. 그와 거의 동시에 빨간 헬멧을 쓴 사람이 탄 오토바이가 반대 방향으로 지나갔는데, 멀리서 그 둘이 교차하는 모습은 어딘가 동화적이었다. 원근감이 전혀 없는, 초현실적으로 수평적인 풍경이다. 거대한 입체 그림 박스처럼 지금 이곳의 맨 뒤에는 하늘이, 그 앞에는 산들이, 그 앞에는 흙과 나무들을 뒤집어쓴 격납고들이 있고, 다시 그 앞으로는 번갈아가면서 좌우로 끝없이 이어지는 회색빛 띠와 초록빛 띠가 교차한다. 거대한 콘크리트 평면 군데군데 작은 연못들처럼 구름의 그림자들이 있다. 모든 것은 평화롭고 느리게 움직인다.
차고에 홀로 앉아 있는데 X가 불쑥 다가와 혹시 약대에 아는 친구가 있는지 물었다. X는 자신의 진로에 관해 몇 번 나에게 이런저런 의견을 물었던 선임이다. 생각은 많지만 계산적인 친구로 별로 창의적이거나 열정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그의 고민이라는 것은 최근까지 금융권에 들어갈 생각으로 정보를 알아보며 한국사 자격증을 따놓았는데, 취업난에 치이고 있는 누나와 부모님이 별안간 전문직을 추천하며 약사 이야기를 꺼냈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부터 약사 시험을 준비한다고 해도 공부를 잘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금융권에서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 정신력이 자신에게는 부족하기 때문에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불만조로 자신의 완벽주의적 성격을 설명하면서 지금껏 자신은 언제나 확실하게 성공이 보장된 일에만 주의와 노력을 기울여왔다고 엄숙하게 말했다. 자신이 과연 이 수많은 불확실성과 방해물들을 헤쳐나갈 수 있을지, 아니 그전에 이런 불투명한 길로 걸어 들어가는 것부터가 맞는 결정인지가 그에게 가장 큰 고민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 한심한 소리를 듣기만 하면서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게 소위 우리 세대들의 고민이다. 우리는 이미 너무 나약하고 의존적인 존재들이 되어버렸다. 이제 나는 X의 이 허접한 고민을 상세하게 기록해두는 까닭을 고백해야 한다. 나는 X의 말을 들으며 놀랍게도 나 또한 바로 얼마 전까지 절대로 다르다고 할 수 없는 문제를 가지고 며칠 밤낮을 고심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느 누구도 어떤 일을 할 때 완벽한 확신을 가지고 시작하지는 않는다. 그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내가 그 일에 적합할지, 내가 그 일로 성공할 수 있을지의 문제들은 일단 시작한 뒤 실제로 일을 해보기 전까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우리의 진정한 능력과 의지는 어떤 일을 선택하느냐의 기로에서가 아니라 선택한 일을 어떻게 이끌어 나가느냐 하는 과정에서 드러난다. 나는 이 말들을 X에게, 그러나 사실은 나 자신에게 했다. 아마도 나 역시 내가 결정한 제대 이후의 진로에 대해 어떤 불가항력적인 확신, 필연성을 원했던 것 같다. 물론 그것은 X의 경우처럼 돈이나 성공에 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나는 ‘왜 유학을 가는가?’가 아닌 ‘왜 유학을 가야만 하는가?’를 자문했다. 나는 어떤 직관적인 각성을 원했고, 아마도 그것을 원해야 했다는 사실에서부터 이미 좌절했다. 나는 나에게 대체 무엇을 말할 수 있었을 것인가? 무엇을 확신하고 무엇을 보장할 수 있었을 것인가? X의 푸념을 들으며 나는 나 자신의 푸념을 듣는 것 같아 속으로 웃었다. 나는 그에게 무엇이든 시작하라고 했다. 이것은 물론 내가 백지 앞에 며칠씩 앉아만 있었을 때 신원혜 교수님이 나에게 했던 말이다. 무엇이라도 그려라.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소로우는 다음과 비슷한 말을 했다.
원하는 방향으로 거침없이 나아가라. 그렇다면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그곳에 도착하리라.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내가 오로지 나아가는 방향이 바로 그 방향인데 어찌 그곳에 도착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