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8. 27 월

by 홍석범

R의 슈투트가르트 마지막 날은 별다른 일정 없이 지나갔다. 점심으로 한산한 공원에서 케밥을 먹었다. 오페라하우스 앞에서 커피를 마셨는데 R은 발레 공연을 보지 못한 것이 많이 아쉬운 듯했다. 도서관에서 파리에서의 계획을 짜고 호텔과 에어비앤비 등을 마지막으로 확인한 뒤 각자 책을 조금 읽었다. 오후 늦게 쇼핑몰을 돌아보고 다시 시내로 나와 R은 선물을 몇 개 샀다. 엘 그레코에서 저녁 식사를 하려고 했지만 문을 열지 않아 일찍 집으로 돌아왔다. R이 통화를 하는 동안 나는 혼자 나와 집 근처를 돌아다니다가 편의점에서 맥주를 샀다. 밤에 샐러드와 건조 소시지, 생라면을 안주로 늦게까지 맥주를 마셨다.






2015. 8. 27



하이젠베르크를 읽고 난 뒤 머릿속에 생각들이 뒤죽박죽으로 섞여 있다. 고전물리학과 양자물리학의 언어적 차이점에 대해 고민해볼 것. 이것은 아마도 전체를 포착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메를로-퐁티는 물리학자들의 존재론에 대해 말한다. ‘과학은 지각적 신념을 전제할 뿐 설명하지는 않는다.’



이곳의 장점은 시야가 넓어진다는 것이다. 모든 것들은 넓고 멀리 있으며 멀리까지 움직인다. 내가 관찰할 수 있는 사물은 한정된 것들이다. 나는 언제나 먼 곳을 바라본다. 가이아의 지느러미들. 맞은편 능선 위에 보이는 전신주는 내 속눈썹보다도 작다. 밤에 전투기가 뜨면 노즐에서 튀어나오는 푸른 불꽃은 점점 멀어지다가 작은 점 속으로 소멸된다. 나는 이런 사물들을 통해서 인간과 도시의 척도를 초월하는 어떤 연속의 개념을 조금씩 터득해간다. 그리고 그것은 곧 지구라는 행성으로 이어진다. 지구를 하나의 행성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것은 붙잡을 수는 없지만 강력하고 분명하게 느껴지는 전체에 대한 어떤 표상이며, 기묘하게도 지금 내 앞에 끝없는 콘크리트의 평면으로 물질화되어 펼쳐져 있다. 나는 처음 이 장소에 도착했을 때 그 스케일에 깊은 감동을 받아 그것은 아마도 더 거대한 원주의 일부분일 뿐인 호라고 상상했었다. 거대한 것에 대한 상상은 더 거대한 것에 대한 상상을 불러온다. 나는 지금 이 행성의 이미지를 가지고 비로소 내가 원주라고 상상했던 그 무엇인가의 의미를 이해하게 된 것일까? 하이젠베르크는 비행기의 궤도를 가지고 ‘예측 가능성’과 ‘이해’를 비교한다. 비행기의 궤도를 직선적으로 연장하면 우리는 이를테면 일정 시간이 지난 후 비행기가 있게 될 위치를 예측할 수 있다. 그러나 조종사에게 비행계획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난 후에만이 우리는 그 궤도 전체를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궤도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물리학에서, 건축에서, 그리고 자연에서? 나는 이곳에서 언제나 전투기가 뜨고 내리는 것만을 본다. 원주는 그 모든 역학관계들이 이루는 하나의 전체이거나 그에 대한 하나의 상징이 될 것이다. 이것은 어쨌든 전체에 대한 하나의 강력한 직관이며, 바슐라르가 언급했던 내부의 존재에게도 주어져야 하는 바로 그 외부적인 운명일 것이다.


우레와 같은 소리를 내며 멀어지는 전투기의 불꽃이 아득한 점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니 어쩐지 울적한 기분이 들었다.



주제들

- 부분과 전체의 관계

- 영향력

- 기술, 재료 등에 의한 개량

- 언어

- 이해

- 독일적인 것에 대하여?

- 중심 질서, 영혼?


내일부터 할 것

- 두 주택 스터디

- 전체성에 대해 마저 쓸 것

- 니체 읽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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