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여유롭게 짐을 싸고 간단하게 청소를 했다. 일단 중앙역으로 짐을 옮겨놓은 뒤 시내에서 중국식 컵누들을 먹었다. 칼스루에와 스트라스부르를 지나 세 시간 만에 파리에 도착했다. 호텔에 체크인을 하니 일곱 시쯤이었고 R은 중학교 동창을 만나기 위해 퐁 뇌프 쪽으로, 나는 카르티에 재단 쪽으로 흩어졌다.
뤽상부르 공원 앞을 지나 큰길을 걸어가는데 조금씩 해가 지기 시작했다. 도로는 넓었고 걷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도시는 크고 어딘가 시원하게 느껴졌다. 철재 난간의 발코니가 달린 고풍스러운 건물들은 자세히 보면 서로 미세하게 달랐다. 길을 건너 왼쪽으로 꺾은 뒤 조금 더 좁은 길을 통과하니 다시 큰길이 나왔고 왼쪽 모퉁이를 돌자 장 누벨의 투명한 건물이 보였다. 그 앞에는 꽤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장을 입은 몇몇 사람들이 이시가미 준야의 전시를 보기 위해 모여 있었다.
일본 건축가의 작업을 그렇게 가까이에서 보게 된 것은 처음이었다. 학교를 다닐 때부터 주변에서 일본 건축은 항상 인기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후지모토 소우류의 감성을 표방했고 세련되고 가벼운 SANAA의 구조나 안도 타다오의 콘크리트에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이소자키를 좋아했지만 그의 작업을 실제로 본 적은 없었고 그가 썼던 글들과 그의 그림들을 몇 개 알 뿐이었다. 도쿄로 워크숍을 갔던 해 쿠마 켄고와 안도의 몇몇 건물을 본 뒤로는 일본 건축에 흥미를 잃었다. 그 이후 군대를 가기 전 다시 일본에 갔을 때 니시자와 류에의 테시마 미술관에서 큰 감동을 받았다. 그곳은 내가 실제로 경험했던 공간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다소 이미지의 생산에 치중하는 듯한 일본 건축가들의 작업에 별 관심이 없었고 이시가미 준야도 예외는 아니었다.
대형 모형들은 환상 세계의 일부처럼 보였다.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키는 동화적인 색채와 서툴게 오려진 아주 작은 크기의 종이 인형들은 건축가의 꿈속에 있는 세계다. 그 세계의 어느 부분도 사실적인 건물처럼 보이지 않았는데, 놀라운 점은 대부분의 모형들이 세계 곳곳에서 실제 크기로 지어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나는 과연 그것들이 지어진 이후에 우리가 그것들을 건물이라고 부르게 될지 궁금했다. 높이가 45미터에 달하는 구부려놓은 청동판 모양의 채플을 건물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러나 그것은 분명한 건축에의 기여물이며 어쩌면 우리는 그것이 건물이 되기 이전, 혹은 이후의 상태로 머물러 있게 된 것에 감사해야 할 것이다. 이시가미 준야의 시작점은 언제나 자연 속에 위치하는 듯했다. 그것은 은유적인 자연이 아닌 문자 그대로의 자연이다. 그는 어린이 공원을 위해 거대한 상상 속 동물들을 만든 뒤 작은 어린이들에게 큰 동물들은 건축이라는 말을 했다. 그의 작업 중심에는 항상 이야기가 있는데, 이것은 만들어진 이야기가 아닌 언제나 그 장소에 있어왔던 이야기이며 그가 조심스럽게 재구성하고 더욱 견고하게 만든 이야기이다. 그러나 환상적인 환경을 만들기 위해 그는 전혀 환상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토치기의 워터 가든을 위한 수종 매핑이나 KAIT 워크숍의 기둥 배치를 위한 동선 트레이싱은 건축가가 현실적인 차원에서 얼마나 깊은 고민들을 하는지에 대한 증거물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그를 예술가가 아닌 건축가로, 또한 탁월한 이야기꾼으로 만들었다. 묘하게도 색종이 조각들로 알록달록 꾸며진 모형들과 넓은 종이 위의 보일 듯 말 듯한 얇은 선들은 무엇인가를 감추고 있는 듯 느껴졌다. 감추어진 것은 아마도 어떤 비밀스러운 노력, 그가 예술가가 아닌 건축가가 되기 위해 외웠던 그만의 조용한 주문들일 것이다. 그리고 동시대인으로서 그의 동화적인 세계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에 용기를 얻었다.
종종 나는 지금껏 건물을 설계한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 말은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내가 그린 그림들은 아마도 현실적인 이유에서 지금 당장 지어지기는 힘들 것이다. 의식적으로 종이 건축의 길로 가려했던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 스튜디오 프로젝트들을 뭐라고 부를 수 있을까?
2학년까지는 재밌는 프로젝트를 만들지 못했다. 그저 무엇인가 근사해 보이는 것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좋았고 그것으로 만족했다. 3학년은 다소 슬럼프의 기간이었고 친구 두 명과 함께 했던 설계는 다이어그램에 불과했다. 4학년 1학기 때 신원혜 교수님을 만났는데 그때의 설계도 제대로 끝낸 것은 못 된다. 그러나 이 서커스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나는 비로소 내가 하고 있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조금씩 고민을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으로 하고 싶은 것을 했고 큰 반대에 부딪히지도 않았다. 이로부터 큰 힘을 받아 그 후 바르셀로나에서 조셉과 두 학기를 보낼 때는 훨씬 더 자유로울 수 있었다. 이때의 결과물들 역시 일반적인 의미로 건물들이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작업들은 그 이후 계속적으로 고민해 볼 수 있는 좋은 주제들이 됐다. 졸업 설계를 위해서는 어쨌든 어딘가 구조 같아 보이는 것이 들어간 그림을 몇 장 그렸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마지막 설계는 내가 했던 모든 설계 중 가장 건물과 거리가 먼 것이었다. 프로젝트 이름이 ‘우주’와 ‘배’를 합친 단어였던 것을 감안하면 어쩌면 애초부터 건물을 지을 생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이것은 잘못된 것일까?
건물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도대체 어떤 건물들이 비로소 지어지는가?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들은 아직 건물의 형상으로 나에게 만들어져 있지 않다. 그러나 나는 이 가치들이 분명 건축에 기여하는 것임을 알고 있다. 우리는 이 가치들이 필요하며, 심지어 그 어느 것보다도 중요하다고 말해야 할지도 모른다. 설사 많은 사람들이 더 이상 그 가치들의 중요성을 헤아리지 않게 되었다 해도…
지어지지 않은 프로젝트에 대해 칸은 언제나 변함없는 긍정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That which is not built is not really lost. Once its value is established, its demand for presence is undeniable. It is merely waiting for the right circumstances.’
나 역시 이 말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