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9. 3 월

by 홍석범

물이 조금만 높아지면 금방 잠길 것 같은 도로를 달려 산타 루치아 역에 도착했다. 숙소 근처까지 가기 위해 배로 갈아타 섬 외곽을 한 바퀴를 돌았는데, 그것은 처음 이 도시로 진입하기 위한 일종의 특별한 의식처럼 느껴졌다. 내가 앉은 방향에서는 모든 게 역광 속에 있었고 계속 튀어 오르는 물방울들 사이로 빛이 산란되어 눈이 부셨다. 엿가락처럼 길게 늘어난 태양빛을 받아 붉은 벽돌 건물들이 금빛으로 빛나며 옆으로 빠르게 지나갔다. 나는 약간 흥분해서 K에게 스콜라리의 날개를 가리켜 보였다. 우리는 배 위에 있었고 사방에서 선녹색 물이 넘실거렸으며 멀리 하늘을 향해 대각선으로 솟아오르는 비행기가 보였다. 움직임과 금빛으로 가득 찬 그 풍경은 내가 경험한 여러 도시의 첫인상들 중 가장 활기차고 몽환적인 것이었다.



숙소에 짐을 푼 뒤 K가 가져온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레스토랑 중 한 곳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그곳은 제법 격식을 갖춘 곳이었는데 나중에 K는 옆자리의 사람이 렌조 피아노인 줄 착각했다는 터무니없는 말을 했다. 운하를 따라 건물 사이를 빠져나가자 검은 잉크처럼 변한 바다가 눈앞에 펼쳐졌다. 우리는 산 마르코 광장 쪽으로 천천히 올라갔다. 광장은 거대한 연회장처럼 불이 밝혀져 있었고 몇몇 카페 앞의 우아하게 들어올려진 천막에서는 악단이 집시풍의 음악이나 가요를 연주했다. 광장을 한 바퀴 돌아보고 성당과 시계탑 사이의 골목길로 들어갔다. 좁은 길목 곳곳에 위치한 음식점과 바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내 오랜 기억 속에서 베니스는 언제나 밤의 도시이자 좁고 어두운 골목길과 운하의 그물 사이에서 갑자기 온갖 종류의 가면들과 정교하게 조각된 작은 향수병들을 파는 호화스러운 상점들이 나타나는 도시였다. 나는 무의식중에 남아 있던 이 이국적이고 환상적인 이미지들이 다시 생생해지는 것을 느끼며 미로 같은 길들을 걸어갔다.






2015. 9. 3



말테는 스물여덟의 나이로 보는 법을 배우고 있던 바로 그 순간 무엇인가를 시작해야만 했고, 그래서 쓸 수밖에 없었다. 사물들을 붙잡기 위해.


릴케의 종교적으로 치열한 사랑론. 나는 플라톤의 종교가 아닌 호메로스의 종교를 믿는다. 릴케가 기다란 화단의 꽃들이 잠에서 깨어나 깜짝 놀란 목소리로 ‘아아 붉은색!’이라고 말했다고 썼을 때 그는 분명 이 신의 은총을 받았다. 우리는 시인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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