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9. 4 화 1

by 홍석범

이른 아침 백색 항구는 걷기가 힘들 정도로 눈부셨다. 다시 한여름으로 돌아간 듯한 날씨. 우리는 지아르디니에 도착해 다시 만날 시간을 정하고 흩어졌다.


상 파울루의 빌라노바 아르티가스와 카를로스 카스칼디, 밀라노의 루이지 카치아 도미니오니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됐다. 스베레 펜이 설계한 북유럽 파빌리온의 지붕은 두 겹의 브리즈 솔레이유로, 직각으로 교차하는 얇은 콘크리트 날개들은 뜨거운 지중해의 빛을 여과시켜 북쪽의 서늘하고 투명한 빛으로 바꾼다. 파빌리온 전체를 비워둔 영국의 섬에는 시적인 가치가 있었다. 넓고 환한 내부로는 일정한 간격으로 설치된 환풍기를 통해 시원한 공기가 들어온다. 말을 하면 기분 좋게 소리가 울리고 중앙의 돌출된 천창을 받치는 오래된 목재 트러스와 부드러운 궁륭을 이루면서 벽과 이어지는 천장은 뒤집어진 배 같다. 간혹 벽에서 발견되는 지난 전시의 흔적들은 형태를 알아볼 수 없게 된 상형문자처럼 보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빠르게 빈 공간을 한 번 둘러보고는 곧바로 발길을 돌렸지만 때때로 몇몇은 한가운데에 오랫동안 서 있거나 두 팔을 벌리고 산책하듯 걸어 다녔다. 그들은 더 이상 입장과 동시에 온갖 전시물이 걸려 있는 벽으로 직행할 필요가 없이 그저 천창을 올려다보거나 말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가 있었다. 이것이 정말로 근사한 것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 자유를 즐기는 사람들을 보는 것은 큰 즐거움이었고 약간은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그것은 눈부신 것, 절대적인 것, 언제나 존재하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것이 아주 잠깐 드러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한국관의 전시는 한국인인 나에게는 흥미로웠다. 방대한 양의 연구 사료들은 타국인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는 지나치게 현실적이거나 혹은 바로 그 측면에서 다소 추상적이었다. ‘국가 아방가르드의 유령’은 한국이 자유 공간을 얻게 되기까지 있었던 산업화와 민주화의 과정을 돌아보는 주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한국의 자유 공간을 이야기할 때는 국가의 역할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에 사회 곳곳에서 작용하고 있는 이러한 보이지 않는 힘들을 유령이라고 지칭한 듯했다. 그중 가장 거대했던 국영기업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와 김수근의 세운상가에 대한 내용이 비중 있게 다뤄졌다. 1960년대 건축, 토목, 항만 등 도시의 총체적인 인프라 건설을 주도했던 KECC는 김중업과 더불어 김수근이 2대 사장을 지내고 김석철과 유걸을 비롯한 한국의 대표적인 건축가들이 도시계획부 팀원으로 활동했던 곳이다. 문득 제2차 세계대전 기간과 종전 후의 혼란기에도 권력층과 꾸준히 접촉을 이어갔던 코르뷔지에가 떠올랐다. 그는 독일이 세운 괴뢰정권에 합류해 자신의 주거와 국토개발에 대한 아이디어를 실현시킬 기회를 노리며 비시에서 18개월간 체류를 하기도 했다. 파시즘에 반대했던 CIAM의 동료들은 그에게 등을 돌렸지만 과연 그를 윤리적으로 비난할 수 있을까? 박정희의 군부 독재 아래에서 KECC의 건축가들은 자신이 정말로 좋다고, 옳다고 믿었던 것들을 실행할 뿐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어쨌든 건축에의 기여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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