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도 섬으로 가기 위해 5시쯤 다시 숙소를 나왔다. 그러나 영화표를 숙소에 두고 온 K는 도로 돌아가야 했고 나는 먼저 팔라초 델 시네마 쪽으로 걸어갔다. 엑셀시어 호텔 근처에는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유리 회전문 앞의 테라스 아래로는 배를 타고 진입하는 손님들을 위한 데크와 전용 입구가 내려다보였다. 붉은색으로 포장된 데크에 배가 정박하면 근사하게 차려입은 손님들이 에스코트를 받으며 내렸고 그들이 천막이 드리워진 긴 데크를 걸어가는 동안 배에서는 수트케이스와 여행 가방들이 옮겨졌다. 다른 배가 도착하면 다시 모든 일이 유연하게 반복되었다. 의식과도 같은 이 일련의 과정은 내가 배를 타고 처음 도시에 진입하면서 느꼈던 감정과 마찬가지로 독자적이고 특별한 방식으로 이곳에 속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어떤 장식적인 화려함에도 의지할 필요가 없는 이 우아한 의식, 바다와 섬이라는 조건이 글래머러스하게 혼합된 공간의 이러한 존재 방식이 이 장소에 깃들어 있는 호화로움의 본질이었다. 그곳은 베니스에 대한 모든 환상적인 이미지들이 집약되어 있는 장소였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순간 그 장소를 완성시키는 일이 일어났다. 큰 카메라를 들고 데크 옆에서 대기 중이던 사람들이 갑자기 큰 소리로 무슨 말인가를 외치기 시작했고 갓 정박한 배에서 금빛 드레스를 입은 나탈리 포트만이 내린 것이다. 여배우는 수행원들의 안내를 받으며 데크 위를 걸어와 그녀를 부르는 팬들에게 웃어 보인 뒤 호텔 안으로 사라졌다.
이미 레드 카펫 앞은 수많은 기자와 팬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곧 배우들을 태운 차량이 호텔 앞에서부터 100미터가 채 안 되는 거리를 차례대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그와 동시에 어둡고 관능적인 음악이 흘러나왔고 곧 나탈리 포트만이 동료 배우들과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들은 그녀가 자기 쪽으로 와주길 바라며 목청껏 그녀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나탈리… 나탈리… 그 엄청난 열기와 흥분에는 거의 주술적인 힘이 있어서 그 영향권 안에 있는 사람의 마음을 똑같이 동요시키고 끓어오르게 했다. 스크린에서는 펜스 바로 앞에 자리를 차지한 팬들에게 다가와 사인을 해주고 그들과 함께 사진을 찍어주는 배우들의 모습이 중계되고 있었다. 곧 포토타임이 시작되자 사람들은 앞사람에 가려 자신은 볼 수도 없는 배우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위에 양손을 최대한 높이 뻗고 고군분투했다. 옆 사람이 찍은 사진을 보며 울음을 터뜨린 여자도 있었다. 반면 펜스의 반대쪽에서는 바로 그 사진의 주인공들이 전혀 다른 세상에서 만들어진 듯한 우아한 의상을 입고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웃어주기 위해 플래시 세례 속에서 밀랍인형처럼 서 있었다. 이 상황은 아주 이상한 상황이었지만, 바로 그 괴리와 그로테스크가 특별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했다. 그리고 그 마취적인 효과에는 부정할 수 없는 감동적인 측면이 있었다.
뒤늦게 K가 도착했고 우리는 잠시 그곳의 분위기를 즐기다가 영화 상영 시간에 맞춰 팔라비엔날레로 향했다. 곧 사라질 그 거대한 건물은 여섯 살의 펠리니가 목격했던 밤 사이 마법처럼 생겨난 서커스 천막과 닮은 점이 있었다.
영화제에서 영화를 보는 것은 일반 상업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경험이었다. 사람들은 기대감에 부풀어 영화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무엇보다 영화의 팬으로서 모든 사람들이 느끼는 설렘이 있었다. 영화가 시작되면서 부드러운 웅성거림은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레드 카펫 위의 나탈리 포트만의 모습이 모든 비극과 정신적 우울, 트라우마와 결핍이 응집된 존재인 셀레스테의 모습과 겹쳐지면서 이야기는 현실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선착장에 앉아 배를 기다리며 그녀의 마지막 말에 대해 생각했다. 그것은 분명 강력한 충동, 살고자 하는 의지였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충동이 그녀로 하여금 노래를 부르도록 했다. 악마는 그것의 효력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악의 저편 1장 6절
그것은 어떤 도덕을 향해 나아가려고 하는가? … 인간의 근본 충동이 바로 여기에서 ‘영감을 불어넣는’ 천재성으로 어느 정도까지 수완을 부릴 수 있었는가를 생각하는 사람은 그 충동이 모두 이미 한 번은 예술을 충동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 충동 가운데 하나하나의 충동은 바로 자신을 기꺼이 현존재의 최종 목적으로, 다른 모든 충동의 정당한 주인으로 드러내고자 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왜냐하면 충동은 지배욕에 차 있고, 또 지배자로서 예술적 사유를 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9절
그대 자신이 그것이며, 자신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에서 왜 원리를 만들 필요가 있단 말인가? … 이 예술은 항상 자신의 모습에 따라 세계를 창조하며, 달리 할 수는 없다. 예술은 이러한 폭군 같은 충동 자체이며, 힘에 대한 가장 정신적인 의지이고, ‘세계를 창조하려는’, 제1원인을 지향하는 가장 정신적인 의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