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9. 5 수

by 홍석범

몬테벨루나에서 버스로 갈아타 40분 정도 꼬불꼬불한 길을 달렸다. 잠시 바다에서 멀어져 들판과 산속으로 들어오니 기분이 좋았다. 버스에는 우리를 제외하고는 몬테벨루나에서 함께 탄 젊은 남자 둘 밖에 없었다. 버스 기사는 우리에게 내릴 역을 소리쳐 알려주었다. 우리가 점심을 먹기 위해 찾아간 곳은 양평의 평양냉면집처럼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이탈리아 시골의 한 식당에서 피자와 파스타를 먹는 것은 묘하게 사치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여사장은 놀랍게도 꽤 격식을 갖춘 영어로 한국에서는 아주 드물게 관광객들이 온다고 말했다. 이 말은 카노바의 깁소테카에서 우리에게 입장권을 끊어주며 그곳 관리인이 했던 말이기도 하다. 그는 일 년에 한국인은 스무 명 정도밖에 오지 않는다고 했다.



스카르파가 아담하게 증축한 건물은 오래전 사진 한 장을 본 뒤로 가끔씩 상상만 해보던 건물이다. 포사뇨라는 낯선 지명은 지도에서 찾아볼 생각도 하지 못했고 그 한 장의 사진으로 인해 머릿속에 각인된 이미지가 너무 좋아서 그걸 깨트리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다. K의 말대로 종종 사진은 거짓말을 하기 때문에 나는 이 건물은 내가 가진 그 이미지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 여행을 계획하던 중 포사뇨가 베니스에서 멀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어 결국 K를 설득해 함께 이곳에 오게 된 것이다.


이 특별한 공간을 요약하는 두 단어는 화사함과 투명함이다. 이 두 성질은 서로를 보완하고 배가시킨다. 카노바의 석고 원본품들이 정갈하게 전시되어 있는 그곳은 자연의 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대리석이나 목재와는 다르게 무정형인 석고의 특성에 따라 무엇보다도 빛의 역할이 중요했을 것이다. 그곳은 얼굴과 두 팔이 없는 니케가 고고하고 영원하게 서 있던 루브르의 계단과는 정반대의 의미에서, 가장 순수한 소박성의 의미에서 감동적이었다. 그 소박성은 석고라는 재료와 모든 영감이 집약된 원본임과 동시에 영광스러운 대리석 완성품을 준비하는 견본이기도 한 그 작품들의 중의적 가치를 대변하는 듯했다. 석고 모형들은 제각각 고유한 빛을 받도록 세심하게 배치되어 있고, 화사하게 빛나는 그들의 살갗 내부로는 피카르트가 말했던 이슬처럼 투명한 침묵이 방울져 내린다. 그 검소하고 고상한 공간은 확실히 예술의 위엄이 극대화되는 전시관보다는 예술이 고이 간직되어 있는 수장고처럼 느껴졌다. 나는 잠자는 님프의 옆에 주저앉아 그 부드러운 등 위로 떨어진 빛이 서서히 움직이는 것을 오랫동안 구경했다.



깁소테카 맞은편 언덕의 꼭대기에는 카노바가 설계한 사원이 있다. K는 그 건물이 아무런 장소적 맥락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을 비판했지만 나는 오히려 그것이 사원 건축의 특징이자 중요한 역할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기하학적 문양으로 장식된 거대한 기단 위에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물은 약간 초현실주의적으로 서 있다. 코르뷔지에 역시 주변의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7에이커의 땅 중앙에 집을 지었다. 그때 건축가는 동시에 조각가이기도 했다. 그것은 장소적 맥락에서 자유로워지는 것과 관계가 있는 것일까? 조각가의 사원 앞에서 내려다보이는 언덕 아래의 마을은 전혀 다른 시간 속에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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