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2. 18 월

by 홍석범

2014. 12. 18



점심을 먹고 눈 위에서 오랫동안 걸어 다녔다. 여유로움은 정신을 움직인다.



시에 대한 비유를 계속하자면 건축에서 장소는 시가 지어지는, 시의 단어들이 의미를 가지게 되는(변증법) 바로 그 장소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의 장소는 언제나 하나의 사건이 될 수밖에 없다.


플라톤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실로 사유를 사랑하는 자의 것, 이것은 파토스, 즉 놀라움이다. 왜냐하면, 이 사유를 짓도록 지배하고 있는 그 시작은 이것 말고는 없기 때문이다.” 놀라움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 자제하면서 머무르게 된다. 우리는 존재자 앞에서─즉, 존재자가 존재하며 또 그렇게 존재할 뿐 달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앞에서─마치 물러나는 듯 여겨진다. 놀라움은 이와 같이 존재자의 존재 앞에서 물러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동시에 물러나게 하고 자제하는 바로 그것으로 이끌린 채 그것에 의해 사로잡히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동시에 놀라움의 사건은 질서가 된다. 이 질서는 플라톤이 코라에 대해 사용했던 체의 비유, 그리드, 다시 말해 사물들이 필연적으로 조직하게 되는 관계(어디에가 아닌 어떻게, 즉 어떠한 방식으로 있게 되는가를 결정하는)를 뜻할 것이다. 결국 놀라움이라는 파토스는 사건인 동시에 질서이며 그것은 다시 존재자가 특정한 장소에 위치하게 되었다는 것과 동어반복이다. 그런데 하이데거는 아르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아르케라는 이 그리스말을 완전한 의미에서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말 아르케는, 어떤 것이 거기로부터 세워져 가기 시작하는 바로 그곳을 뜻한다. ‘거기로부터’라는 이 말은 어떤 것이 시작하는 과정에서 출발점으로서 뒤에 남게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아르케는 이 낱말의 동사인 아르케인이 말하는 것처럼 끝까지 지배하는 것이 된다. … 놀라움은 사유(건축)를 떠받들고 지탱하며 끝까지 철저히 지배하는 것이다.


어떤 것이 거기로부터 세워져 가기 시작하는 바로 그곳은 분명 하나의 장소이다. 파토스는 구축으로서의 사유를 지탱하고 있는 동시에 지배하고 있다. 건축의 권역 안에서 사실상 이 네 개념들(파토스, 사건, 질서, 장소)은 완전히 겹쳐져 있다. 이것은 아르케라는 이름의 고유한 문법구조이다. 그리고 그 문법구조를 통해 형성되는 명제들은 전부 한 곳을 향해 있다. 건축가는 하나의 개념에 대한 무한한 표현을 터득해야만 한다. 이제 앞으로 해야만 하는 일은 다시 시작점으로 돌아가 순차적으로 해명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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