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 것
벤츄리 - 시와 전체성
요시후미 - 삶의 응축
바라간 - 공간
필립 존슨 - 아름다움과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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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5시경. 약 5분가량 라인 주변 전체가 황금빛으로 물드는 놀라운 장관을 목격했다. 잔디밭은 어느 순간엔가 이미 가을의 색으로 바뀌어 있고 한 시간 전까지 내리던 비에 푹 젖은 콘크리트 활주로는 반짝거리는 갯벌 같다. 사물들이 동시에 만개하는 특별한 순간에 신체는 사로잡혀 단지 몰두하는 하나의 기관이 된다. 태양은 그렇게 감동적인 위용과 힘으로 자신의 일부를 무한으로 던지고는 사라져 버렸다. 칸이 사물은 다 타버린 빛이라고 말했을 때 그는 어쩌면 비슷한 경험을 했던 것일까?
창문을 공간으로서 생각하는 것. 창문을 여는 즐거움을 복원시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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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을 자르고 따듯한 물로 샤워하니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온몸이 맞지 않는 부품들처럼 덜그럭거리는 듯한 느낌이 있다. 오랜만에 R과 통화했다.
벤츄리는 대립적인 것으로 이루어진 건축에서 고유성이란 포괄적인 전체를 말한다고 했다. 시는 많은 표현에 통일성을 갖도록 하는 게 목적이다. 나무와 금속, 넓은 면과 작은 걸쇠, 콘크리트와 유리, 얇은 것과 두꺼운 것… 브룩스 : 시인의 작업은 결국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알듯이 경험적 사상의 통합을 제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떤 시인이 경험적 사상이 다양하면서도 실로 하나의 것이라는 것을 극적으로 만들어내야만 한다면, 역설과 모호성을 사용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시인은 우리에게 통찰력을 준다.
경험의 통합이 건물에 고유성을 가져온다. 그것은 건물을 강력하게 만든다. 라인 빌라는 여기서의 나의 삶의 응축이다. 나는 이곳에서 일 년 반째 생활하고 있다. 하나의 총체적인 사건. 자, 이제 이것을 어떻게 실체화시킬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