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0. 16 화

by 홍석범

벌써부터 텔아비브에 가는 것이 심란하다. 그러나 페르난다는 현명하게도 나에게 저번 학기 역시 처음에 나는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음을 상기시켰다.






2015. 10. 16



어제는 사라졌던 내 옷이, 오늘은 책 한 권이 돌아왔다. 누군가의 단순한 실수로 인해(이를테면 남의 옷을 자기 것으로 착각한다든지 ─ 실제로 모두의 옷이 똑같기 때문에 ─ 남의 책 위에 자신의 책을 잠시 올려두었다가 함께 가져가 버리는 식의), 그리고 바로 그 실수의 완전한 우연성으로 인해 초래된 혼란 속에서 사물의 주인이라고 자칭하는 우리들은 완전히 무력해진다. 우리가 사물들에 부여하는 이른바 개연성, 나아가 필연성은 얼마나 허상적인 것인가? 말하자면 우리는 얼마나 사물들의 고유한 역사와 동떨어져 있으며 그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위치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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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카를 주석과 부록을 중심으로 한 번 속독했다. 들뢰즈의 독해를 읽어볼 것. 스피노자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은 필연성의 인식인 것처럼 보인다. 이 개념은 후에 니체에 의해 영원회귀의 형태로 계승되었다. 필연성의 인식을 진정한 해방으로 여기는 것은 강력한 정신에게만 가능하다. 이것은 위버멘쉬의 최초의 조건이었다. 스피노자에게서 신(즉, 자연)과 이성은 하나의 동일한 현실로 융해된다.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바로 이 질문으로 철학은 철학이 된다. 학문의 최고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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