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0. 25 목

by 홍석범

2015. 10. 25



부정은 비교의 존재이다. 이것은 우리가 구별되는 모든 종류의 존재들을 하나의 추상 개념 속에 모아놓고, 그것들을 동일한 허구적 이상에 관련시키는 것에서 유래한다. 이 허구적 이상의 이름으로 우리는 이것들, 혹은 저것들이 이러한 이상의 완전성에 결핍되어 있다고 말한다. 돌은 사람이 아니고 개는 말이 아니며 등. 어떤 본성도 다른 본성을 구성하는 어떤 것에 결핍되어 있지 않다. 이렇게 한 속성은 자신의 본질을 구성하는 것과 관련하여 그것이 가질 수 있는 최대한의 완전성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속성의 본성을 결여하고 있지 않다. 이것은 존재 양태가 보다 적은 완전성으로 이행하여 자기 자신과 비교될 때에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스피노자에게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어떤 것에 결핍되어 있는 것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즉 부정은 아무것도 아니다. 실제로 그에게 부정적인 것의 제거는 슬픔을 토대로 하고 있는 모든 정념들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을 경유한다.



potestas ~할 수 있는 잠재적 능력

potentia 필연적이고 현실적인 능력


모든 능력은 행위이고 능동적이며 현실적이다. 능력과 행위의 동일성. 모든 능력은 변용 능력과 분리될 수 없고, 이러한 변용 능력은 한결같이 그리고 필연적으로 그것을 실행시키는 변용들을 통해 실현된다. 즉, 능력의 실현이 바로 양태, 양태의 본질이 바로 능력의 정도이다. 본질은 potentia, 변용 능력은 potestas.


실체(신, 즉 능산적 자연)의 경우 변용 능력은 필연적으로 능동적인 변용들에 의해서 실현된다. 실체는 양태들 자체를 생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존재 양태의 경우 변용될 수 있는 그것의 소질aptus은 다른 존재 양태들에 의해 자신 속에 생산되는 변용들과 감정들에 의해 수동적으로 (그러나 마찬가지로 필연적으로) 실현된다. 이 변용과 감정들은 상상이자 정념들이다. 정확히 말해 감정들은 코나투스(자신의 존재를 끈질기게 지속하려는 노력)가 결정될 때 취하는 모습들이다. 다양한 감정 아래서 스스로를 의식하는 코나투스는 곧 욕망이다.


모든 것은 본질에 대한 긍정적 개념화에 의존하고 그것으로부터 파생된다 : 신 속에서의 본질에 대한 긍정인 능력의 정도, 존재 속에서의 본질에 대한 긍정인 코나투스, 최대와 최소의 정립인 변용 능력, 이 긍정적인 한계 내부에서의 행위 능력 혹은 존재의 힘의 변이들.


코나투스는 존재 양태의 권리(자연권)를 규정한다. 존재 속에 계속 머무르기 위해, 주어진 변용들을 통해서, 결정된 감정들 아래서, 어떤 결정에 의해 내가 할 수밖에 없는 모든 것. 이 모든 것은 나의 자연권이다. 이 권리는 정확하게 나의 능력과 동일한 것이며, 코나투스는 제1운동자, 즉 목적인이 아닌 작용인이다. 코나투스는 모든 능력의 상태와 마찬가지로 언제나 현실적이다. 성공한 노력으로서의 코나투스, 혹은 소유한 능력으로서의 행위 능력은 덕vertu으로 불린다. 덕은 코나투스 이외의 다른 어떤 것이 아니며 그것은 또한 능력을 행사한 양태가 그 능력을 소유하도록 만드는 실행 조건들 속에서는 작용인으로서의 능력 이외의 다른 어떤 것도 아니다. 한 신체의 작용이 그 자신에게만 의존하게 되면 될수록, 즉 유일 실체로서의 신과 비슷해질수록, 그 작용에서 그것과 경쟁하는 다른 실체가 적으면 적을수록, 더욱더 그 신체의 정신은 판명하게 인식할 수 있는 소질을 지니게 된다. 따라서 양태의 능력은 신의 절대적 능력의 내포적 부분 혹은 정도로서 이해된다. 에티카 전체는 의무론으로서의 도덕에 대응하는 능력 이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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