슐레머는 기하학적인 변형을 통해 몸의 활동성을 제약시키고 그 결과물을 형이상학적 춤이라고 불렀다. 추상화된 순수 공간의 중심에서 이 형이상학적 춤(der nichts sagt und alles bedeutet)을 통해 우리는 공간을 인지한다. 이때 댄서(Tänzermensch)는 생물학적 몸과 기하학적 공간의 제약을 동시에 받는 존재로 그는 자기 자신의 몸과 자기 주변의 공간을 동시에 느끼고 있다. 관람자는 그의 춤의 궤적에 자기 자신의 개인적인 기분과 해석을 더해 공간 전체에 대한 인상을 얻게 된다. 마치 초음파를 발산해 지형을 알아내는 박쥐처럼.
모든 안무는 일상적인 움직임들에서 파생되었다.
allgemein gültig und unerschöpflich
[지성교정론]
제3종 인식. 직관적 인식만이 사물을 사물의 본질을 통해 지각한다. 변증론적 사유, 논증, 설명이 아니다.
하나의 사물이 그것의 본질에 의해서만 지각되는 것은, 내가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내가 알 때이거나…
내가 이해하기로 직관적 인식은 곧 필연적인 인식이며 동시에 필연성에 대한 인식이다. 코나투스가 지속을 노력하며 존재를 욕망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제3종 인식은 나의 변용된 신체, 나의 신체를 변용시키는 외부 양태로서의 사물, 그리고 모든 양태들의 본질이 필연적으로 구성하는 유일한 실체로서의 자연의 삼위일체 속에서 이루어진다.
나는 올바르게 추론함으로써 올바른 추론을 증명해 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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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법에서 참된 관념이 어떤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 관념은 실제적인 대상에 준거하지 않으면서도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인식 능력을 더욱더 잘 이해하게 한다. 공통 개념 이론은 각각이 하나의 속성을 갖고 있는 실체들에서 출발하는데, 공통 개념들로 사용되는 이 실체들은 허구를 갖고 있는 않은 기하학적 존재들과 유사한 것이다. 우리의 인식 능력과 관련을 갖게 됨으로써 참된 관념은 동시에 표상적 내용이 아닌 자신의 고유한 내적인 내용을 발견하게 된다. 참된 관념은 우리의 인식 능력에 의해서 형식적으로 설명됨과 동시에 물질적으로 자신의 고유한 원인을 표현한다. 이때 참된 관념은 적합한 관념이 되며 우리에게 발생적 정의를 제공한다. 이 역생 속에서 우리는 하나의 속성을 갖는 실체들이라는 관념으로부터 모든 속성들을 갖는 자기 원인으로서의 유일 실체라는 관념으로 이행하게 된다. [스피노자주의(자연의 사물들의 목적연결)는 무한하게 완전함(단지 자신의 종 안에서만 무한할 뿐인 모든 속성들)으로부터 본성으로서의 절대적으로 무한함(모든 속성들로 구성되는 실체)으로의 지향이다.] 신의 관념에 이르게 되자마자 종합적 방법에서 역행적이었던 것이 모든 관념이 신의 관념으로부터 서로 연결되어 따라 나오는 점진적 연역(신으로서의 화수분)에 자리를 넘겨준다. 신의 관념은 모든 일반성을 추방하고 신의 본질로부터 단일한 현실적 존재들인 사물들의 본질들로 이행하도록 한다. 관념들의 이 연쇄는 그 관념들이 바로 그것들이 자신들의 고유하고 자율적인 질서에 따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관념들은 자신들의 고유한 원인을 표현하고 우리의 이해 능력에 의해서 설명되는 한에서 신의 관념으로부터 서로서로 연결되어 따라 나온다.] 스피노자가 정신을 정신적 자동 기계라고 부르는 이유.
스피노자에게 있어 완전한 정의란 사물의 가장 깊은 본질을 드러내는 것이다. 창조된 사물의 정의는 가장 가까운 원인을 포함해야 하며 그것으로부터 그 사물의 모든 특성들이 도출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중심에서부터 원주까지 그어진 직선들의 길이가 같은 도형으로서의 원 (발생적X) VS 한끝이 고정되고 다른 끝이 움직이는 어떤 직선에 의해 그려지는 도형으로서의 원
발생적 정의는 그 사물의 원인을 언표한다. 증명은 정의의 필연적인 귀결이다. 증명의 기본적인 요체는 정의된 사물로부터 어떤 성질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그러나 정의가 명목적인 경우 우리는 각 정의로부터 단 하나의 성질만을 이끌어낼 수 있다. 그것으로부터 다른 것들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다른 대상들, 다른 관점들을 개입시켜야 하며, 정의된 사물을 외부 사물들과의 관계 속에 위치시켜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때의 증명은 사물에 외적인 운동이다. 그러나 정의가 발생적일 때 증명은 그 사물의 모든 특성들을 이끌어낼 수 있으며 동시에 지각이 된다. 즉, 이때의 증명은 사물에 대한 내적인 운동을 파악한다. 증명은 정신의 눈이다. 사물을 설명하는(펼치는) 것은 더 이상 지성이 아니며, 오히려 지성 속에서 설명되는(펼쳐지는) 것이 사물이다. 설명은 언제나 자기-설명, 전개, 펼침, 역동성이다.
실체는 속성들 속에서 설명되고, 속성들은 실체를 설명한다. 속성들은 양태들 속에서 설명되고, 양태들은 속성들을 설명한다. 양태 → 속성 → 실체(참된 관념 파악의 경로). 자연은 설명과 함축의 공통적 질서이다. 설명과 함축의 동일성을 기초 짓는 것이 이해이다. 이해한다는 것은 언제나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것을 파악하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것을 가능한 것으로 사유하는 것과 대립된다. 신은 가능태들을 사유하지 않는다. 신은 자신이 존재하는 것처럼 그렇게 필연적으로 자기 자신을 이해하며,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사물들을 생산한다. 신은 형식(관념들)을 생산하는데, 그 형식을 통해서 그는 자기 자신과 모든 사물을 이해한다. 복합성으로서의 신.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모든 사물들은 동시에 형식적이면서 객관적으로 신의 설명들이자 함축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