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 수업 중;
왜, 무엇을, 어떻게
그것은 우리가 각각 다른 방식으로 은유하고 있음을 뜻한다.
우리가 각자의 건축가들에 대해서 말하는 방식 - 그것은 이미 그것대로 하나의 은유이다.
각각의 사물이 자신의 존재를 끈질기게 지속하려는 노력은 그 사물의 결정된 본성으로부터 필연적으로 나오는 것 이외의 다른 어떤 것도 아니다. 코나투스가 정신에만 관계되어 있을 때는 의지라고 불리지만 그것이 정신과 신체에 동시에 관계되어 있을 때는 충동이라고 불린다. 충동의 본성으로부터 필연적으로 인간의 보존에 기여하는 것들이 나오며 인간은 그러한 것들을 행하도록 결정되어 있다. 욕망은 보통 자신의 충동을 의식하고 있는 한에 있어서의 인간에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충동에 대한 의식을 수반하는 충동으로 정의될 수 있다. 즉, 우리는 어떤 것을 선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에 그것을 지향하려 노력하고, 원하고, 추구하고, 욕구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우리가 어떤 것을 지향하려 노력하고, 원하고, 추구하고, 욕구하기 때문에 그것을 선이라고 판단한다.
스피노자에게 있어서 기쁨과 사랑은 완전성으로의 이행이고 슬픔과 증오는 파괴임을 명심할 것.
감정의 기원과 본성에 관하여
3부 57
스피노자 : 각각의 개체는 자신에게 부여된 본성에 만족하고 그것을 즐기며 살지만 각자가 만족하고 있는 그 삶과 즐거움은 그 개체의 관념 또는 영혼일 뿐이다.
니체 : 나에게 사건들에 대해서 말하지 말라. 그대들이 그대들 자신에게 사건이다. 그 외에는 어떠한 일도 그대들에게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실체의 본질을 영원의 상 아래에 표현하는 관념은 정신의 본질에 속하는 일정한 사유의 양태로서 필연적으로 영원하다. 영원성은 시간에 의해 정의될 수 없고 시간과는 어떠한 관련도 없으며 신체 안에는 그것에 대한 어떠한 흔적도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신체 이전에 존재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사물을 보고 관찰하는 정신의 눈은 증명 자체이며 정신은 지성에 의해 파악한 것들을 기억 속에 가지고 있는 것들과 똑같이 느낀다. 우리는 우리의 정신이 신체의 본질을 영원의 상 아래에 포함하는 한에 있어서 우리의 정신은 영원하다는 것, 그리고 정신의 이러한 존재는 시간에 의해 정의되거나 지속에 의하여 설명될 수 없다는 것을 느낀다. 우리의 정신은 그 자신과 신체를 영원의 상 아래에 인식하는 한 필연적으로 신에 대한 인식을 가지며, 또한 자신이 신 안에 있으며 신을 통해서 파악된다는 것을 안다.
베르그송에게는 정신만이 유일한 지속이며 존재의 방식이다.
5부 39
‘대단히 많은 것에 유능한 신체를 가진 사람은 정신의 가장 큰 부분이 영원한 그런 정신을 가진다.’
목표 : 단순히 두뇌뿐이 아닌 몸 전체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 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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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의 고상함은 그의 완전무결한 정신으로부터 비롯하는 것일까? 괴테는 자연에 대한 사랑을 시로 표현했지만 스피노자는 정밀한 형이상학을 통해 설파한다. 들뢰즈는 그를 비철학자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른다고 썼다. 누구에게나 그로부터 빛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스스로를 스피노자주의자로 발견하는 것과 같다.
에티카에는 분명 어떤 음악적 구성이 있다. 이것은 비범한 사실이다. 그는 직관을 설명해내야만 했기 때문이다.
자연의 사유 - 음악
자연의 연장 - 건축
모든 형식들의 상호 교환성은 다만 일자의 본성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