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1. 10 토

by 홍석범

아침 8시에 집에 도착했다. 씻고 짐을 풀 새도 없이 바로 쓰러져 잤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오후 3시였다.



본의 첫인상은 완연한 가을이었다. 첫 번째 기차가 연착되면서 만하임에서 갈아타지 못하고 한 시간을 기다렸다. 두 번째 기차도 예정 시간보다 30분 연착됐는데 도착역을 바로 앞에 두고 십여 분을 더 지체했다. 창밖으로 화사한 단풍이 보였고 그 뒤에는 라인강이 있었다. 나는 앞으로도 쭉 본을 오렌지빛과 기분 좋은 선선함으로 기억하게 될 것이다.


호텔 로비에서 이름표와 잡다한 팸플릿이 든 에코백을 받은 뒤 체크인을 하려는데 내가 묵을 곳은 맞은편의 다른 호텔이라고 했다. 방에서 간단하게 정비를 한 뒤 내려와 사람들이 거의 빠져나간 뷔페에서 점심을 먹었다. 이미 식은 음식뿐이었지만 그래도 먹을만했다. 내 맞은편에는 로비에서 내게 이름표를 줬던 행사 담당자 중 한 명이, 오른쪽에는 대만에서 온 한 남학생이 앉았다. 영어로 인사치레를 한 뒤 독일어로 몇 마디 얘기를 나눴다. 내가 병따개를 건네주자 대만 남학생은 내 음료수 뚜껑까지 따주었다.


일찍 도착해 함께 식사를 한 사람들은 서로 아는 척을 하며 삼삼오오 자리를 잡았지만 나는 아는 사람이 전혀 없었다. 전체 인원의 거의 절반이 중국인들이었다. 그 밖에도 대만, 일본과 한국, 뉴질랜드와 호주 사람들이 조금씩 섞여 있었다. 각 파트별 담당자들은 번갈아가며 자신을 소개한 뒤 이제 갓 독일에 도착한 대다수의 사람들을 위해 이것저것 설명했다. 내 앞에 앉았던 박사과정의 한 한국 남자는 나를 보고 독일에서 한국인을 처음 만난다며 반가워했지만 그 후 우리는 별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다시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뷔페로 몰려 들어갔다. 처음 앉았던 자리에 옷을 걸쳐 놓고 음식을 가져왔는데 테이블이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점심을 같이 먹었던 하우가 포함된 대만인 무리였다. 그들은 나에게 어디에서 왔는지 물었고 내가 한국이라고 대답하자 내 왼쪽의 여자가 반가워하며 한국말로 인사했다. 저녁을 먹고 있는데 대만인 무리의 윌리엄과 아는 사이인 듯한 여학생이 뒤늦게 도착해 내 오른쪽에 앉았다. 알고 보니 P는 L의 대학원 후배로 뮌헨에서 막 건축 석사를 시작했다고 했다. 우리는 금방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그룹별로 일종의 시티 투어를 했다. 로비에서 잠시 일행이 모이기를 기다리며 비로소 하우와 제대로 몇 마디를 나눌 수 있었다. 서로 사는 곳도 멀지 않았기 때문에 심적으로 가깝게 느껴졌다. 그와 다른 투어를 신청한 나는 P와 함께 그룹 담당자 옌을 따라 밖으로 나갔다. 우리 그룹에는 뉴질랜드에서 온 프레드릭과 몇몇 일본인들, P와 윌리엄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둘은 뮌헨의 지역 모임에서 이미 한 번 만났다고 했다. 본의 구시가지를 돌면서 맥주의 유래와 가장 오래된 선술집 등에 대한 설명을 듣고 유명하다는 세 곳에 들러 세 종류의 맥주를 조금씩 맛봤다. 투어가 끝난 뒤 다른 바로 자리를 옮겼는데 미셸과 하우의 일행도 합류했다. 약간 취기가 오른 상태로 거의 모든 사람들과 얘기를 나눴다. 모두 웃고 떠들면서 서로 금방 친해졌다.


술을 꽤 마신 탓에 다음 날 아침 약간 두통을 느꼈다. 나는 계란과 소시지, 베이컨, 연어, 빵과 치즈를 가득 담아왔지만 하우는 식욕이 별로 없는지 거의 먹지 않았다. 문화 교류에 관한 마지막 강연이 끝나고 우리는 또 한 번 식사를 하기 위해 뷔페에 모여 앉았다. 약간 요양원의 삶처럼 느껴졌다. 어쨌든 강당에서보다는 식당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훨씬 더 흥미롭고 중요했다. 그리고 다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친구를 사귀기 위해 애쓰는 듯 보였다. 전혀 새롭고 재밌는 경험이다. 전날 밤의 후유증으로 목이 완전히 쉬어 거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상태로 많은 사람들과 작별 인사를 했다. 그중 대부분은 이름만 겨우 기억해낼 수 있는 정도의, 거의 안다고 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들과 어쨌든 하룻밤을 보냈고, 막상 각자 자신의 집으로 돌아갈 때가 되자 아쉬움을 느꼈다. 그리고 나는 그들 역시 그렇게 느낄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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