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기

2019. 10. 2 수

by 홍석범

나에게 죽음이 온다면 그것이 고독사일 것이라는 사실은 명백하다. 이것은 내가 고독으로 죽게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내가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을 때 나는 고독하리라는 의미다. 나는 이 사실을 이미 몇 년 전에 깨달았다. 이 깨달음이 앞으로 나의 삶에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토마스 만이 프리데만 씨의 짧고 강렬한 인생을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줬듯이 심지어 최고 수준의 교양마저도 해결해줄 수 없는 갈망과 외로움이 인간 안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서야 나는 이 행위가, 간헐적으로나마 무엇인가를 끄적거리는 글쓰기가 일종의 죽음의 경험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더욱 정확하게 말하면 이것이야말로 최상의 고독사다. 이곳에 쓰인 말은 결코 누구의 입으로도 말해질 수 없는, 즉 영원히 화자가 없는 말이므로, 또한 나 자신은 필연적으로 씀과 동시에 이것으로부터 끊어져 나오게 되므로 이 안에 팽팽하게 도사리고 있는 무는 내가 매 순간 직면하는 죽음의 얼굴이자 고독과 침묵의 모습이다. 그러므로 고독사를 준비하는 가장 효과적인 의식은 매일 무엇인가를 쓰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고독을 연습하는 것은 아니며 죽음을 촉진시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둘 모두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는 고독의 힘을 빌어 우리 각자에게 할당된, 그리고 아마 모두에게 동일하지는 않을 죽음의 양을 소화해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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