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2. 30 토

by 홍석범

일기의 함정은 종종 연대기적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최소한 나에게 있어서는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이다. 일어난 일들을 순서대로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일어난 일들의 내적 영향을 그에 합당하게 표현해야 한다. 그것이 내가 쓰고 싶은 것이다.



마리나와 헤어진 후 혼자서 공원 쪽으로 걸어갔다. 호수 반대편으로 해가 지고 있었고 구름들이 빠른 속도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호수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눈을 감으니 눈꺼풀을 통과해 들어온 강렬한 빛이 머릿속을 온통 오렌지빛으로 채웠다. 수면에서는 얼음이 녹는 반짝거리는 소리가 났다.


저녁을 먹으며 마리나와 나의 가족에 대해 얘기했다. 그녀는 내일 저녁 유르겐과 참석하는 연말 모임을 위해 케이크를 구워야 했는데 내가 부엌에 함께 있어주길 바랐다. 나는 식탁에 앉아 빵 반죽이 익기를 기다렸다.






2014. 12. 30



건축가는 사물들의 반짝거림을 감지하고, 그것이 드러나도록 하는 질서를 실체화시킨다. 그 질서는 자유롭게 사로잡으며 하나의 가능성으로서 응집되어 있다.


그리스인들은 그들의 신화에서 전 자연을 그리스인들로 녹여냈다. 그들은 자연을 마치 인간의 모습을 한 신들의 가면극이자 분장인 것처럼 생각했다. 그들은 현실주의자들과는 정반대였다. 모든 것이 변형들이었기 때문에 세계 자체는 예술에 다름 아니었다. 인간은 모든 진정한 존재에 대해 표피적으로 관계한다고 니체는 말했다. 우리는 존재 자체에 대해 인식할 수 없으며 세계는 단지 우리에게 드러나는 현상-변형들로서의 세계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는 오직 예술적으로만 정당화될 수 있다. 진리의 허구성을 투시하는 니체에게 있어 탈출구는 예술이었다. 가상의 세계를 구성할 수 있는 예술의 힘을 받아들여야 한다. 건축가가 모든 형이상학을 기만으로 거부했을 때, 그가 할 수 없는 일을 예술은 한다. 거기에 예술의 역설적 가능성이 있다. 예술은 자신의 진리가 자유로운 환상의 반영으로서의 비진리임을, 인공임을 고백한다. 니체는 탈레스의 철학에 대해 그 목적과 산물에 있어서 궁극적으로 예술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플라톤 이전의 철학자들은 하나의 세계상을 의도한다. 그들에게 있어 철학은 총체적 존재의 상을 개념으로 서술하는 예술이었다. 코르뷔지에는 그 효과를 연극적인 것으로 이해했다. 호메로스 안에는 시를 통해 언어를 파수하는 모든 그리스인이 있다. 그들은 예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우리에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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