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숭숭한 꿈에서 깬 뒤 머릿속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떠올리기 위해 노력했지만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밤새 땀을 많이 흘렸다. 눈을 뜬 채로 이불 속에 있었다. 4분의 3 정도 내려진 블라인드와 창문 사이의 길고 납작한 틈 사이로 흐릿한 하늘이 보였다. 조금 더 밝아질 때까지 웅크리고 기다렸다. 곧 빛이 환해졌고 비로소 일어나 샤워를 했다.
점심으로 마리나가 오믈렛을 만들었고 그 후에 우리는 그녀가 어제 구운 케이크 한 조각과 함께 녹차를 마셨다. 그녀는 나에게 이곳에 온 뒤로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난 것처럼 느껴지는지를 물었는데 나는 잠시 생각한 뒤 딱 6주의 시간이 흐른 것처럼 느껴진다고 대답했다.
무엇인가를 하기 위해 책상 앞에 앉았지만 곧 나른해졌고 창문을 연 뒤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었다. 얼굴만 내놓은 채로 창밖으로 나무가 한 번씩 흔들리는 것을 지켜봤다. 평화로운 오후. 창가에 앉아 노트의 마지막 장에 쓰고 있다. 이 노트를 독일에 도착한 이튿날부터 6주간 거의 모든 곳에 빠짐없이 들고 다녔다. 일단 닥치는 대로 단어들을 내던져 붙잡아 놓는다. 운이 좋다면 시간이 얼마간 흐른 뒤에 그것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배우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조금 전 창문을 열었을 때, 머리에 파란색 리본을 묶고 나뭇가지를 든 채로 잔디밭을 가로질러가던 여자아이를 본 것과 같은 것. 그런 순간마다 아마도 나는 이 세상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되는지 모른다. 문득 떠오른 또 다른 일이 있다. 시내에서 나와 비슷한 또래의 여자가 담배를 피우며 나와 반대 방향으로 걸어왔다. 그녀는 오른손에 담배를 들고 있었는데, 그녀와 나 사이에는 한 무리의 아이들이 있었고 그녀는 그 옆을 지나는 순간 아이들의 머리 위로 오른손을 올렸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적어두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현존하는 것의 가치에 새로운 열정을 불어넣기 위해서, 또한 세계의 변화되는 부분을 개선하기 위해서 건축가는 실재를 긍정해야 할까? 건축이 무엇인지에 대한 견해는 달랐어도 미스와 코르뷔지에는 건축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같은 생각이었다. 건축가는 형이상학의 파괴된 토대를 인식함으로써 시작한다. 그러나 그는 새로운 신앙을 세우지 않는다. 그는 새로운 삶을 건설한다. 진실로 생산적인 모든 것은 불쾌감을 유발하는 것이다. 진정한 건축가는 비극적 인식의 소유자이다. 그는 스스로 환상을 원해야만 한다. 그것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구성적 힘의 유일한 원천이기 때문이다. 절대적이고 영원한 것을 구현해야 한다는 미스의 전제는 추상에 관한 철학적 방법론을 제공했다. 그 자체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모든 것에 대해서도 타당한 존재 질서를 밝히기 위해 그는 사물의 본질을 가리는 현실을 벗겨내야 했겠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이 구체적 현실뿐이다. 건축가는 이 현실을 조형함으로써 실존적인 의미에서의 선구자가 된다.
천재에 대한 니체의 묘사는 다름 아닌 자기-대화를 전개하는 건축가의 모습이다; ‘모든 위대한 인간은 자기 시대의 적자로 보이기를 가장 원하며 어쨌든 소인배들보다 더 강하게, 더 민감하게 시대의 결함에 고통받는다면, 그런 위대한 인물이 자기 시대를 상대로 벌이는 투쟁은 겉으로는 자신과의 무의미하고 파괴적인 투쟁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단지 그렇게 보일 뿐이다. 왜냐하면 그 투쟁에서 그는 자신이 위대해지는 것─다시 말해 자유로워지는 것, 온전히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을 방해하는 것과 싸우기 때문이다.’
이제 26이 된다. 버지니아 울프도 26세에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자정이 조금 넘어 머리를 감고 몰래 빠져나와 산책을 했다. 밤은 정교함과 신비로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쏟아지던 눈이 멈춘 뒤 사방은 쥐 죽은 듯 조용했는데 그때 하늘은 어떤 완전무결한 잉크로 채워진 모놀리트 같았다. 바람이 강하게 불었지만 별들은 미동도 하지 않아 몽환적인 기분이 들게 했다. 나는 잠시 빈 공간이 도드라져 보일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며 어떤 신비로운 장소에 완전히 동화되어 그곳의 중심이 된 듯한 느낌으로 활주로 위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