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기

2019. 10. 12 토

by 홍석범

가족과의 여행이 끝나고 삼 주 동안 하려고 생각했던 일들이 있었다.


책은 거의 읽지 못했(않았)다. 그러나 죌크 교수와 만나 형식적인 절차를 마무리 짓고 이번에 써야 하는 WA의 아주 대략적인 틀을 잡았다. 그녀는 학술적 연구의 목적이 우리가 어디로부터 어떤 사고를 이어받는지 알기 위함이며 바로 그 사고를 우리뿐 아닌 이미 많은 선조들이 해왔음을 밝히는 데에 있다고 했다. 내가 느끼기에 이 말은 매우 단도직입적이고 솔직한 것이었다. 문학적인 상상력의 산물이 될 2부와 최대한 많은 이름들을 들먹여야 할 학술적 연구를 표방하는 서문 형식의 1부를 교묘하게 연결 짓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가장 큰 숙제로 보인다. 구조가 중요하다. 이 구상은 거의 처음 독일에 온 직후부터 이어져온 것이다.


몬스터를 교정하고 정제시키는 즐겁고도 지난한 작업을 시작했다. 많은 디테일들을 다시 그려야 한다. 이야기들도 다시 쓰고 있는 부분들이 적지 않다. 이 작업은 대체적으로 상상력을 자극하지만 질릴 때도 있다. 그럴 때는 가차 없이 손을 놓고 다른 일을 해야 한다. 완전히 질려 쳐다보기도 싫어지는 위험을 사전에 차단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마무리되면 아마 지금까지 내가 한 작업 중 가장 정교하고 어쩌면 앞으로는 다시 할 수 없을 설계가 될 것이다. 끊임없이 상상력과 심장을 활동시키며 끝까지 밀고 나가야 한다. 내용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종내에 총체적인 전체로 묶이는 형식, 즉 그것의 최종적인 책-형식이다.


여행에서 가지고 돌아온 각종 책들과 팸플릿, 엽서들은 아직도 책상 한쪽에 널브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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