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 주변에는 팔라디오와 칸, 블랑쇼, 바슐라르, 카프카, 울프와 보르헤스의 책들, 그리고 이 탑들에 어울리지 않는 망구엘의 조금은 시시한 몇 권의 책들이 쌓여 있다.
하루 종일 라디에이터에 등을 대고 책들을 뒤적거리면서 좋은 문장들을 채집한다.
그리고 이렇게 쓰는 것이 정당하다면, 그것들을 이어 써보려는 시도 속에서 간혹 나 역시 어떤 의미 있는 것을 쓰기도 한다. 그것은 마치 폐허 위에 집을 짓는 것을 상상하는 것과 같다.
글, 특히나 어떤 개념에 대한 글, 혹은 설명글을 쓰는 일은 일종의 조종술이다.
나는 다소 교활하게 단어들을 멋대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섬 같던 문단들이 점점 어떤 관계를 형성하기 시작하고 바로 그 단어들이 빛나면서 우아하게, 어떠한 부정직한 면모도 보이지 않으면서 미끄러져 넘어간다. 이것이 마술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오늘 내가 오랫동안 써오기를 갈망하던 어떤 내용을 비로소 써버렸을 때, 그리고 이 내용은 정확하게 내가 2017년 여름 처음으로 어떤 구조 속에서 생각했던 개념인데, 그것이 아주 유연하고 힘 있는 모습으로 내 앞에 미끄러져 나왔을 때 안도감과 희열을 느꼈다.
안도감은 내가 그것에 정당할 수 있었기 때문이고, 희열은 내가 지금까지 그 개념의 길을 쭉 걸어왔음이 증명되었기 때문에.
나는 그 부분을 계속 소리 내면서 읽음으로써 선율을 들으려고 노력한다.
이것은 멍청한 은유가 아니다.
말 그대로 소리를 듣고 이상한 부분을 고치는 것이다.
독서의 역사를 회고해 볼 때 이는 내가 글과 알게 되는 가장 자연스러운 행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