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기

2020. 3. 27 금

by 홍석범

코로나의 영향으로 삶은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슈투트가르트의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지만 큰 문제는 아니다. 비자만 계획대로 연장된다면 오히려 돌아가는 날을 최대한 늦추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가장 이성적인 판단일 것이다. 학교로부터 이미 첫 번째 콜로키움을 디지털 방식으로 전환할 것이라는 통보가 왔고 두 번째 역시 마찬가지일 가능성이 크다. 졸업 학기를 한국에서 보내게 된 웃긴 상황이다. 여름까지 유럽의 동향이 나아지지 않으면 일자리를 구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문제가 될 수도 있지만... 지금 당장 내게 중요한 것은 졸업 설계이고 어찌 됐든 계획했던 바대로 조금씩 해나가고 있다.


항공편이 세 번 연속 취소되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심란한 기간이 2주 정도 있었다. 마음이 뜬 채로 친구들을 만나거나 책을 뒤적거리는 것 외에는 실질적인 작업을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사유는 사마라의 폐허 위를 맴돌고 있었던 듯하다. 모래 속에 파묻힌 그 불가사의한 조각들을 조금씩 건드려보기도 하면서. 약간 고통스러운 시간이 계속되다 얼마 전 돌파구가 있었다. 최초에 그 생각은 다소 억지스럽게 보였지만 곱씹을수록 충분히 가능성 있게 느껴진다. 성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며칠째 매핑을 계속하고 있다. 기이한 정보들, 다시 말해 조금의 환상을 덧입히고 있다. 지금 나의 스승은 피라네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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