훔볼트에서 마스터 발표 대본을 쓰면서 수미쌍관의 묘한 만족감을 느꼈다. 2017년 여름 유학을 준비할 때 또 다른 훔볼트에서 배운 내용을 이름이 같고 보다 쾌적한 이곳에서 종종 공부했다. 지금 나는 그때 상상하던 여정의 종착점 혹은 반환점에 와 있는 것이다. 시작한 곳에서 끝을 준비하게 된 모순적이면서도 상징적인 상황에서 나는 같은 자리로 돌아온 전혀 다른 사람일까? 아직까지도 어눌하게 구사하는 독일어가 중력처럼 그 사이의 많은 일들을 관통하고, 그래서 마치 그것은 첫 장과 마지막 장이 하나의 언어로 쓰인 책과 같은 느낌을 준다.
마지막 설계는 상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주제들, 이렇게 말하는 것이 허락된다면 나의 주제들을 담고 있다. 나는 그것이 아름답고 유연한 호를 그리기를 바란다. 이 호는 매일 밤 전투기들을 올려 보내던 거대하고 신비로운 바로 그 라인의 호다. S가 나의 구상에 대해 가야만 하는 길을 가는 것이라고 말했을 때 그것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필연성에 대한 언급이었다. 필연과 원호, 수미쌍관은 모두 같은 어휘에 속한다. 그것들이 하나의 세계관을 표현할 때 우리는 감동을 받는다. 이반은 나에게 발리서가 너의 접근이라고 명시한 사실을 상기시켰다. 네 명의 교수들 모두 일종의 온화한 호기심을 보였다. 그들이 나의 이야기를 들었고, 나는 계속 이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이 즐거웠다. 어쨌든 약간의 자유가 보장된 것이다. 그들 모두 나의 접근을 이론적이라고 부른 것에 대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고민 중이던 상황에서 신 교수님의 물리학자에 대한 비유가 도움이 됐다. (물론 그 순간 나는 파인만을 떠올렸고 그가 얼마나 고무적이고 아름다운 방식으로 자신의 신념에 대해 말했는지를 생각했다.) 과학자의 이론은 그의 세계관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우리들 모두는 단지 위대한 탈레스의 영혼을 표방하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