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 2 화

by 홍석범

오케스트라는 라헨만이 그들에게 헌정했다는 곡을 가장 잘 연주했다. 나머지는 다소 실망스러웠다. 오케스트라를 뜻하는 Klangkörper는 거대한 항아리를 연상시키는 시적인 단어다. 이 말은 음악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이 몸 자체와 직결되는 것임을 함축하고 있다. 음악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우리는 몸이, 존재의 덩어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카페에서 오랜만에 보르헤스의 강의록을 읽었다. 눈이 먼 그 시인이 고개를 약간 들고 먼 곳을 바라보듯 허공을 주시하며 강연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는 내면의 깊은 곳에서 시구들을 낚아채 공기 중에 띄워놓았다. 우리는 이미 시를 너무도 잘 알아서 그것을 다른 말로 정의할 수 없는 처지에 있다고 그가 말했을 때 나는 왠지 모르게 가슴이 울컥했다.

매거진의 이전글2018. 1. 1 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