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 3 수

by 홍석범

밤새 소나기가 내리고 강풍이 불었다. 눈을 떴을 때는 비바람이 조금 잦아든 상태였다. 역으로 걸어가던 중 바람에 우산이 뒤집어졌다. 빗방울들은 바람에 전부 날아가 버린 듯했다. 거대한 푸딩 속을 헤집고 지나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미술관에 도착했을 때 해가 났다. 커튼이 내려져 있지 않은 창문 사이로 흰 빛이 들어왔다. 파니니의 거대한 그림. 쿠빌라이 칸은 마르코 폴로에게 자신이 상징을 모두 알게 되는 날 자신의 제국을 소유하게 될지 물었다. 실제로 그 그림은 영원한 도시 로마를 소유하고 싶어 했던 슈아죌 공작이 파니니에게 의뢰했던 것이다.






2015. 1. 3



내 이름은 빨강을 다 읽은 뒤 바슐라르가 세밀화에 대해 썼던 것을 떠올렸다. K가 새 노트를 가져오겠다고 했다.



K와의 대화를 기록해두어야 한다. 그가 건축의 도덕을 논하는 것은 미학적인 사변을 피하기 위한 시도이기도 하다. 일종의 글 쓰는 기계와 같은 것일까? 미스의 크라운 홀과 콜하스의 MTCC를 비교하며 K는 크라운 홀 안에서 사람들이 쪼그라든다고 표현했다. 삶의 전략으로서의 건축 ─ 그는 놀랍게도 생존이라는 단어를 쓴다. 그것은 (가족을) 부양하는 건축이다. 그가 MTCC에서 보는 다원주의는 일종의 중심-없음이다. 우리는 콜하스의 몇몇 건물들과 그의 보이드 전략에 대해 얘기했다. K는 덜렁거리는 MTCC의 문짝들을 보며 어떤 자유방임을 느낀다고 했다. 어쨌든 그는 완벽한 것보다는 자유롭고 재미난 것을 추구한다. 콜하스에게서 드러나는 똑똑한 것(머리가 비상한 것)과 감각이 있는 것의 차이. 우리는 무엇인가를 진술해야만 한다. 이것은 오만일까? 그러나 그것은 결국 우리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가 된다. K는 줌터에게서 역시 미스에게서와 마찬가지로 어떤 답답함을 느꼈다고 했다.


우리는 내가 유학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에 대해 얘기했다. 그는 미국에서 돌아온 뒤 유학 생활에 대한 일종의 환상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했는데 그것은 분명한 특권이다. 곧 일을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 그는 부담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K는 생태건축의 측면에서 병원에 약간의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덧붙였다. 시장을 파악하는 것은 전략의 문제이지 본질적인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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