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일기장이다. 깨끗한 종이들로 꽉 차 있다. K는 나를 위해 다양한 종류의 펜을 무더기로 사 왔다. 어제의 대화에 덧붙여. 미스의 ‘본래적’이라는 단어는 누가 보증하는가? 터키의 세밀화가들을 보면 예술을 위해서는 어떤 종류이든 결국에는 신이 필요하게 될지 모른다. K는 크라운 홀에 열광하는 기독교인들에 대해 말했었다. 우리는 조형 이전의 가치들을 불러오기 위해 무엇인가를 조형해내야만 한다는 모순에 부딪히게 된다.
먼저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그다음에는 방식을 결정한다. 오늘 오후 한 무성 영화를 보면서 다음과 같은 생각을 했다. 니체가 인식했던 음악의 효과가 바로 그런 것이었을까? 말은 음악으로 대체되고 우리는 언어의 차원 위에서 새로운 표현을 발견하게 된다. 말이 없는 영화가 불러일으키는 감정이 훨씬 다채롭다는 것은 신기한 사실이다. 자동차 바퀴가 굴러가는, 혹은 누군가 흐느끼는 등의 모든 소리가 음악으로 대체된다. 그러나 그것은 누가 바꾸는 것일까? 그것을 듣는 우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