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기

2020. 10. 23 금

by 홍석범

연수계획서를 쓰면서 장학금을 신청하기 위해 썼던 학업계획서를 다시 찾아보니 마지막에 썼는지 기억도 안 나는 Here I hope to discover my role as an architect라는 거창한 문장이 있다. 작성 날짜는 2017년 9월로 그다지 누군가에게 어떤 인상을 남기거나 돈을 받아내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정말로 당시의 막연한 꿈을 썼던 것 같다. 학교를 졸업한 지금 내가 그 역할을 알게 됐다고는 전혀 할 수 없지만 건축 시장으로 뛰어들기 전 10년의 아카데미아를 개괄하여 매니페스토를 정립하겠다고 호기롭게 선언했던 대로 어쨌든 매니페스토 비슷한 걸 졸업 설계를 통해 시도했고 그에 대해 죌크 교수가 당신을 통해서 건축의 범위는 점점 확장하는 듯싶습니다라고 말해준 것으로 그간의 비주류적이고 은둔자적인 노고가 조금 보상받았는지도 모르겠다. 돌아보니 놀랍게도 이 다소 장황하지만 진심인 계획서에 들어 있는 대부분의 것들을 실제로 했고 그 사실은 나를 고무시킨다. 그것은 어쨌든 내가 건축을 향해 세워놓은 길이 일관성 있게 뻗어가고 있음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이 계획서가 자신의 소명을 다한 지금 나는 드디어 시장으로 뛰어들면서 그다음의 계획서를 쓴다. 막연했던 꿈은 조금 더 현실적인 것이 되었고 그것을 씀으로써 나는 그것을 길로 만들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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