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기

2020. 10. 21 수

by 홍석범

김 선생님의 소개로 일 년 전쯤 한 번 연락을 나눈 적이 있는 E에게서 갑자기 축하한다고 카톡이 왔다. 무슨 소린가 했는데 곧 일한다는 소식을 들은 모양으로 자신은 얼마 전 한국에서 결혼을 했으며 우니에서 석사 3학기째라고 했다. 졸업하고 돈 버는 건 당연한 일인 걸요. 오히려 결혼이 훨씬 축하받을 일이지요. 진부한 말들이 오가다가 어쩌다 커피까지 한잔하게 됐는데 왜 만났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뭔가 궁금해하는 눈치였고 나도 마지막으로 시내도 좀 걷고 장도 볼 겸 한 번 보자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슈투트가르트에서 이렇게 한국인을 만난 건 도착한 이튿날 K의 소개로 알게 됐던 S 부부와 맥주를 마신 것 이후 처음이었다. 아니 그럼 3년 동안 한국인을 안 만났다는 말씀이세요? 저를 보러 한국에서 놀러 온 친구들은 있었죠. 얼마나 자주요?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모임 같은 건 안 하세요? 한국에서 너도 한국인이고 나도 한국인이고 우리 둘 다 서울에 사니까 만나자고 하지는 않잖아요.


E는 표면적으로 얘기가 통하는 것 같으면서도 전혀 공감대가 생기지 않는 대화 상대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축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우리는 거의 세 시간이나 어찌어찌 말을 이어갔다. 그는 젠틀하고 다소 고지식한 부류의 사람이었는데 그가 보여준 그의 포트폴리오 역시 그와 비슷하게 생긴 물건으로 그는 굉장히 자세하게 그 각각의 내용물들을 내게 설명해 주고는 혹시나 할 말이 떨어질까 봐 이 얘기라도 하려고 가지고 나왔다고 덧붙였다. 나는 그가 약간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답례로 핸드폰에 들어 있던 내 작업물을 보여줬는데 이는 나로 하여금 오히려 말하고 싶은 마음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그건 분명 내 안에 도사리고 있는 교만이었을 것이고 나는 그 재수 없는 망설임을 들키지 않기 위해 아무런 영양가 없는 말들을 늘어놓아야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2020. 10. 20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