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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석범 Dec 05. 2020

2020. 12. 1 화

하루 종일 그린 도면이 다음날 아침 완전히 뒤바뀌는 등의 상황에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그런 경우가 많을수록 많은 것들을 그려볼 수 있다. 이것은 지금 나에게 아주 좋은 훈련이다.


다소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일의 전반적인 진행에 있어서의 비효율이다. 이것은 곧 대표 건축가의 사고의 비효율을 의미한다. 처음에 조금만 전체적으로 생각했더라면 이 건물이 목조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국소적인 이미지에만 치중하다가 뒤늦게 전체 구조를 재고할 수밖에 없게 되어 도면을 전혀 다른 구조로 다시 그리는 일은 회사의 입장에서는 분명 멍청한 짓이다. 애당초 설계를 하나의 합치된 시스템이 아닌 자잘한 모양이나 느낌과 같은 것들의 콜라주로 취급한다는 이야긴데 물론 이 특정 프로젝트가 그런 성격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건축가는 서로 상충하는 두 개의 시점에서 동시에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런 면에서 H의 판단에는 별로 신뢰가 가지 않는다. 그는 사고에 두서가 없고 너무 쉽게 말을 내뱉으며 또 너무 쉽게 그 말을 바꾸는 경향이 있다.


멕시코인들이 만든 모형을 들고 내가 왔다 갔다 하니 마티아스가 못마땅한 눈으로 쳐다본다. 왜요, 그래도 모형은 예쁘게 만든 것 같은데라고 내가 말하자 그는 손을 내저으며 그건 그냥 모형일 뿐이지라고 콧방귀를 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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