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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석범 Dec 05. 2020

2020. 12. 2 수

마티아스와 마티아스가 있다.

둘 모두 건설관리자로 마티아스는 콘크리트와 조적조, 마티아스는 목조 전문이다.


마티아스는 덩치가 산만하고 가끔씩 저녁에 쪼끄만 가방을 메고 찾아오는 꼬마 남자애의 아버지이며 목소리가 동굴 안에서 치는 천둥 같다. 처음에는 그에게 조금 두려움을 느꼈지만 지금은 가장 편하게 장난을 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는 뚫어지게 사람을 쳐다보는 습관이 있는데 눈을 마주치면 나는 손을 흔든다. 그럼 그가 거인처럼 다가와서 얼굴이 왜 그 꼴이야, 어제 잠 안 잤어?라고 한다. 그는 불같은 성격이고 버럭버럭 화를 잘 내는데 그만큼 우스갯소리도 종종 한다. 그러나 그런 말을 할 때도 눈을 부릅뜨고 진지한 태도로 쩌렁쩌렁 말하기 때문에 별로 농담같이 안 들린다. 마찬가지로 아마 그는 실제로는 별로 화를 내는 것이 아닌데 그 소리가 대단해서 다만 그런 것처럼 보이는지 모른다.


마티아스는 반대로 성냥같이 길쭉하고 호리호리하다. 내가 질문하면 이런저런 것들을 설명해 주면서 친절하게 단어의 철자를 종이에 적어주기도 한다. 그는 최근에 조금 시시한 어떤 집합주거 공모전을 위해 나무로 작은 모형을 만들었는데 H가 그것을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것 같다고 의기소침해했다. 내가 손바닥 정도 크기의 그 모형을 찬찬히 들여다본 뒤 오래된 모형 같네, 예쁘다라고 말하자 그는 오래됐다고? 하지만 이건 새 건물이야!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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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는 거의 하루 종일 통화를 하거나 미팅을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그는 과연 언제 설계를 할까? 아마 이 동네에서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진 탓에 더 이상 진득하게 책상 앞에 앉아서 설계 따위는 할 시간이 없는지도 모른다. 쟈밀라는 얼마 전 어떤 프로젝트를 발표하는데 H의 반응이 마치 그 평면을 처음 보는 것 같았다고 했다. 여기저기 지시사항을 내린 뒤 문을 탁 닫고 자신의 메자닌 사무실로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면 그는 오로지 홍보와 섭외에만 신경 쓴다는 의구심이 종종 든다. 그는 야망이 있고 겉모습에 다소 치중하며 유명세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명해지고 싶은 이유가 더 좋은 프로젝트를 맡고 싶어서이고 이건 결국 설계에 욕심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막상 너무 유명해져서 설계 따위 할 새가 없어진다면 유명세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다. 나는 어쨌든 건축가가 되고 싶은 것이지 사업가나 스타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상하기로 모든 잘나가는 사무소의 경우 비슷한 상황일 것이다. 어느 순간 필연적으로 건축가는 더 이상 설계를 안 하게 되는지 모른다. 그는 스케치만 휘갈기고 나머지는 집단 지성인 그의 팀이 해결할 것이다. 건축가가 되면 나는 단지 소박하지만 고상함이 있는 프로젝트를 내 손으로 꾸준히 하고 싶을 뿐이다. 아니 반대로 그것을 위해 건축가가 되고 싶은 것이다. 이빨을 닦으면서 문득 다음과 같은 생각을 했다. 이미 세상은 스타 건축가로 넘쳐나고 더 이상 건축으로 혁명을 논할 시기도 지났다. 그리고 쓰레기도 쌓여가지만 좋은 건축도 사방에 있다. 예전에는 위대한 건축가가 되기를 꿈꿨으나 그런 것은 다 소용없는 일이다. 어떤 건축이 위대한 건축가의 작품이냐 아니냐 하는 점은 건축사가들에게만 중요한 문제다. 내가 운이 좋게 어떤 좋은 건물을 지었다고 가정해보자. 한때 내가 그 건물을 지었지만 그 건물은 내게 만족스럽지 않다. 그 건물은 호크니의 누이가 언젠가 말했던 것처럼 공간이라는 신으로부터, 잠재의식의 자아로부터, 또는 아마도 어떤 다른 건축가로부터 내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종종 나는 어디선가 봤던 무언가를 단지 인용하고 있음을 깨닫는데 이를테면 그것은 재발견되는 것이다. 보르헤스가 시인에 대해 말했듯이 건축가는 이름이 없는 편이 차라리 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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