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를 타기 위해 뛰어가던 중 카드지갑을 떨어뜨린 것 같았는데 다시 찾을 수 없었다. 마침 타냐를 방문 중이던 마리나가 대신 은행에 전화를 걸어주었다. 시내에서 독일어 문제집을 산 뒤 집으로 돌아왔다. 오므라이스를 만들다가 손끝을 베었다.
객관적인 것은 하나임이 자명한 것이다. 그 전체성(Oneness, Wholeness)의 가장 대표적인 예는 자연이다. 자연이 하나임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자연 안에서 모든 것은 합목적적으로 합치되어 있다. 자연에 대한 사랑은 곧 완벽한 기계에 대한 믿음과 같다. 객관성은 이와 같은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이고 진술하는 것이다. 그것은 형식이 아니다. 니체는 우리는 자연 자체에서 절대 지식에 대항하는 메커니즘을 감지하게 된다고 말했다. 철학자(건축가)는 자연의 언어를 인식하고 말하며, 예술적인 것은 유기적인 것과 함께 시작한다. 방식과 출발점은 달랐지만 미스 또한 이 통합이 궁극적인 목표점이었다. 그는 건축계획이 내적인 질서를 구현할 수 있고, 또 그것이 삶처럼 하나의 전체로서 현재에 효력을 미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객관성에 대한 시도는 전복되어야 한다. 건축가는 개인의 예술을 폐기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스스로의 몸을 통해 건축 안으로, 그 건축을 받치고 있는 가장 예술적인 본능 안으로 깊이 빠져들어 몰입함으로써 그 건축에 대해 진술할 타당한 권리를 되찾는 것이 먼저이다. 객관성은 건축가와 건축 사이의 관계에 대한 표어이다. 이건 실제로 미스가 했던 말인데, 오직 삶만이 건축가들의 스승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일기를 읽어봤는데 울프가 젖은 붓 방식이라고 불렀던 것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녀는 형식이란 어느 하나가 다른 것을 바르게 이어가는 감각이라고 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어쨌든 형식의 가장 큰 부분은 논리이다. 투르게네프와 도스토예프스키의 경우 한 명은 본질적이지 않은 것을 진리에서 떼어내기 위해 쓰고 또 고쳐 썼던 반면 다른 한 명은 모든 것이 중요하다고 말할 것이다. 니체는 시를 썼기 때문에 짧게 말하기를 좋아했다. 하나의 형식을 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관점과는 또 다른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