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 10 수

by 홍석범

어제 일찍 침대에 누웠지만 이런저런 생각들 때문에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집을 나선 지 여섯 시간 만에 나는 줌터의 작은 채플 앞에 서 있었다. 아직 이른 시간이었고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그곳에서 홀로 오래 있을 수 있었다. 그 기묘한 동굴 속에서 서성이는 동안 점점 한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다시 기차역까지 3.5km 정도 되는 들판길을 걸어가는데 바람이 많이 불었다. 안달루시아의 마을들을 여행했던 여름 생각이 났다. 다시 쾰른으로 돌아와 간단하게 점심을 먹은 뒤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콜룸바로 갔다. 찢어진 피부 사이로 드러난 뼛조각들처럼 모래와 먼지 사이에서 반짝이는 콜룸바 성당의 유적 위로 거대한 갤러리를 받치고 있는 기둥들은 내가 본 것 중 가장 시적인 구조물이었다. 그 기둥들에서는 윤이 났고 어떤 고고한 힘이 느껴졌다. 그 힘이 바로 건축이라고 생각했다.


쾰른 대성당에 앉아 기차를 기다리면서 나는 피터 줌터라는 건축가의 신조를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고 느꼈다. 그리고 이 경험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든 써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답사기의 형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 함정에 빠진다면 결국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다. 이 내적 영향들을 통해 새롭게 쓸 수 있어야 한다. H는 사전의 형식을 추천했다. 감상적인 서술을 최소화하는 글쓰기를 시도해야 한다.






2015. 1. 10



일어나자마자 어제 잠들기 전 침대에 누워 한 생각들을 재빨리 적어둔다. 이곳에 와서 지금까지 대략 열다섯 권의 책을 읽었다. 한 달에 세네 권씩인 셈이다. 2월부터는 시간이 더 많아지기 때문에 앞으로 7개월 동안 40권을 읽는 것이 목표이다. 나는 책을 좀 느리게 읽는 편이다. 나의 독서 패턴은 조금 더 진득해질 필요가 있다. 메모해 놓은 것들을 보면 거의 일정한 횟수로 책을 나누어 읽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설류는 보통 이틀 만에 읽는 반면 조금 더 집중력이 필요한 책은 거의 항상 열 번 정도에 나누어 읽는다. 너무 자주 끊어 읽으면 전체 흐름을 파악하는 시야가 흐려진다.


엄청난 안개다. 그러나 하늘은 청명하고 햇빛은 안개를 뚫고 스며들고 있다. 겨울이라 강렬한 주황빛이다. 묘한 날씨. 오늘 비행은 미뤄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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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새벽 두 시를 조금 넘었다. 라인 앞에 앉아 약간 몽롱한 상태로 졸음을 쫓기 위해 이걸 쓴다. 리하르트 바그너를 마쳤다. 다소 찬양조의 문장들. 위인에 대한 묘한 동경심과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아마도 그것이 니체의 목적이었리라. 천재를 향한 경외심을 되찾는 것. 우리는 아직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정신이 부패하지는 않았다. 니체가 묘사하는 바그너에게서 나는 이상적인 건축가의 정신을 본다. ‘예술사에서 바그너의 등장은 자연 자체의 통합적, 비분할적 예술 능력이 화산처럼 폭발한 것과 비슷하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그에게 어떤 이름을 붙여야 할지 흔들릴 수밖에 없는데, 각각의 개념을 크게 확장해서 하나의 말을 사용하더라도 가령 그가 시인인지 조형 예술가인지 아니면 음악가인지 흔들리는 것이다. 혹은 그를 위해서 하나의 새로운 말을 만들어내야만 하는 것인지.’ 위대한 인내자이자 자기 자신의 직관자로서의 건축가의 삶.


오늘 마지막으로 본 하늘은 회백색과 연보라색이었다. 부드럽게 층이 지워진 상태로 색깔들은 어떤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서로 은밀하게 관여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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