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der-Klaus-Feldkapelle

공간에 대하여

by 홍석범
2007년 5월 신을 찬미하며, 평화의 중재자이자 신비주의자, 스위스 산중에 은거했던 성 클라우스에게 봉헌되다.



채플에서의 공간 경험은 기묘했고 많은 생각─질문─을 하도록 했다. 나는 공간이란 도대체 무엇인지를 다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에 대한 생각들을 글로 써보고자 한다. 이 글쓰기는 개인적인 경험의 기록이다.



생각을 전개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공간의 개념에 대해 짚어보는 것이 필요하다. 공간을 우주와 같이 이미 주어진 절대적인 단위로 보는 관점에서부터 우리가 경험을 통해 습득하는 것들을 구조화하기 위해 도입하는 틀걸이로 보는 관점까지 공간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게 이어져왔다. 그러나 공간에 대한 하나의 명백한 정의를 내리는 것은 불가능할뿐더러 모두에게 공간이라는 것이 단일하지 않다는 측면에서 다소 무의미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것은 당연히 존재하지만 우리는 그것에 대해 무엇인가를 언급해야 하는 상황이 닥치면 난처해진다. 보르헤스는 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시를 너무도 잘 알아서 시를 다른 말로 정의할 수 없는 처지에 있습니다. 마치 우리가 커피의 맛을, 붉은색이나 노란색을, 분노, 사랑, 증오, 일출, 일몰 또는 우리 조국에 대한 사랑의 의미를 정의할 수 없듯이 말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우리의 가슴속에 너무 깊이 있기에, 우리가 공유하는 공통적인 상징들에 의해서만 표현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왜 우리에게 다른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공간을 사유함에 있어서는 그것에 대한 질문을 간추려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법일 것이다. 그 질문은 다름 아닌 어떤 관점으로 사물과 현상을, 즉 이 세계를 인지하는가이다. 건축가의 형이상학이 확립되기 시작한 것은 사실 얼마 되지 않았는데, 19세기에 슈마르조에 의해 공간이 건축의 주제로 옮겨지면서 건축-공간론은 공간 예술로서의 건축의 개념을 계승하는 일원론적 공간론과 공간과 형태를 분리하여 사유하는 이원론적 공간론의 두 갈래로 나뉘게 된다. 슈마르조는 예술을 ‘면의 예술-회화, 물체의 예술-조각, 공간의 예술-건축’의 세 가지 부류로 정의했고 이후 기디온과 브루노 제비에 의해 공간 예술로서의 건축이라는 개념이 확립되었다.


슈마르조는 인간에게 주어진 물리적이며 심리적 조건이 건축의 근간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칸트의 선험적 감성론과 마찬가지로 슈마르조 또한 공간을 종합적으로 그리고 선험적으로 규정하는 기하학을 건축의 원칙으로 설정했는데, 이를 바탕으로 그는 세 개의 좌표축을 인간에 대면해 있는 대상 세계의 영역이 아닌 바로 인간의 신체 내부로 옮겨 놓았다. “우리를 가로지르는 이 공간, 우리가 오로지 우리 인간만이 그 공간의 중심이 된다고 인식할 때, 우리는 우리가 가진 귀중한 자산을 발견하게 된다. … 그리고 건축은 바로 이 자산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는 건축이 기능을 위해서 존재하는 예술 형식도 아니고 또 의미의 원천이 형태 혹은 구조에 있는 것 또한 아니며 오히려 주관에 내재되어 있는 선험 형식이라고 주장했다. 사물이 인간이 의지를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구축적 전달 수단이라는 인식은 19세기 말 감정이입 이론의 토대가 됐다. 감각적 현상으로 표출된 대상의 내용을 직접적이고 감정적으로 파악할 때 우리는 그와 비유적인 자신의 감정을 자기 내부로부터 대상에 투사하게 된다. 감정이입에 의해 대상에 귀속되는 이 감정이 실제적으로 체험되는 감정인가 단순히 표상된 감정인가 하는 것은 늘 논쟁거리가 되어왔지만 이것은 어쨌든 우리에게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슈마르조는 우리가 내적으로 가지고 있는 공간감과 공간에 대한 환상이 우리에게 공간 조형에의 의지를 불러일으킨다고 했다. 우리는 바로 우리가 건축이라고 부르는 예술 형식에서 그 의지를 충족시키게 되는데, 이 형식을 그는 그리스어의 번역으로 공간 조형이라고 불렀고 건축의 역사는 공간의 역사가 아닌 공간감의 역사임을 주장했다.


그러나 하이데거는 공간은 어떤 장을 비워주는 것이며 건축하는 것은 결코 공간을 조형하는 것이 아니라고 비판했다. 그는 공간 조형으로서의 건축을 부정했는데 그를 추종했던 쿠르트 바트는 형태가 존재하지 않으면 공간은 지각되지 않는다는 도발적인 말을 했다. 하이데거의 공간 이론은 간단히 말해 존재의 토폴로지이며 그것은 문자 그대로 존재 진리의 장소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이 시도를 통해 그가 주장하려는 것은 공간이 물성 공간이기 이전에 본래적으로는 의미 공간이라는 점이다. <건축함 거주함 사유함> 등의 그의 후기 저작에서 공간은 사건으로서의 존재의 진리가 드러나는 장소라는 점이 분명하게 부각된다.


그에 의하면 장소의 어원적 의미는 창끝이다. 창끝은 창의 모든 것이 합류하는 지점인 동시에 그 모든 것이 거기로부터 흘러나와 비로소 그 무엇으로 존재하게 되는 원천이다. 그는 이 원천을 장소라고 불렀다. 시의 장소에 대한 사유에서 그는 는 언어로 표현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우선 개별적 시적 작품 안에서 언어로 표현된 것에 입각해 시의 장소를 지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일차적 Erläuterung이 전제되어야 그런 의미를 가능하게 하지만 언어로는 표현될 수 없는 그 장소로 귀환하는 작업인 Erörterung─논구─시와 사유의 대화가 가능하게 된다. 이것은 하나의 건물이 지어지는 과정과 동일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재료로 하나의 체계를 구축하지만 그 결과물은 궁극적으로 그 물리적인 체계를 초월하는 하나의 장소가 된다. Erörterung과 Erläuterung은 해석학적 상관관계에 있다. 존재론적으로는 Erörterung이 전제되어야 Erläuterung이 가능하지만, 인식론적으로는 역으로 일차적 Erläuterung이 전제되어야 Erörterung이 가능하다. 결국 반성적 사유에 이르게 되는 이 순환은 우리가 구축으로서의 사유(건축)를 통해 원천적인 장소의 이미지를 얻게 되기까지의 도상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이다. 장소는 설계 이전에 이미 존재하며, 건축은 그것을 드러내게 되는 하나의 사건이다. 우리는 그 건물을 통해 반대로 장소를 인식하게 되지만, 존재론적으로 장소가 이미 그곳에(모든 곳에) 있었기 때문에 그 위에 비로소 건물이 지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장소 개념은 특히 인간의 거주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역사적, 문화적으로는 예술 작품과 건축물로 마련된다. 인간이 사물 옆에 머무르며 사물을 세계를 모으고 있는 하나의 장소로 이해하게 됨으로써 공간은 시간화한다. 여기서 공간과 시간은 기실 동-근원적인 것이다. 고이언은 집이라는 인간에게 가장 본질적이고 전역사적인 장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시초에는 이름을 알아서 부를 수도 없었던, 처음으로 보는 장소에서 이 세계에 태어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이름 없고 모르던 장소에서, 그 이름을 알게 되기까지 자라나고 돌아다녀 그 이름을 사랑으로써 부를 수 있으며─그 이름을 가정이라고 하고 거기에 우리들은 뿌리를 박는데─그곳을 스스로의 사랑의 보금자리로 할 수 있다는 것, 그리하여 우리들이 그곳에 대해 말할 때마다, 연인들이 그리하듯 향수에 찬 노래로, 바람에 넘치는 시로 말하게 된다는 것!





뒤샹은 예술에 대해 우리에게 보이는 것이 예술이 아니라 바로 그 사이(gap, 아마도 보이는 것과 우리들의)가 예술이라고 말했는데 이것은 오히려 공간에 대한 진술인 것처럼 들린다. 그것은 말하자면 무엇이 보이는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보이는지를 말하는 것이다. 릴케는 공간은 우리들 밖에서 사물들로 퍼져나가 그것들을 표현한다고 했다. 우리가 사물과 관계를 맺음과 동시에 그 공간은, 사물의 표현으로서의 공간은, 우리 내부로 들어온다. 이것은 슈마르조가 주장했던 나를 가로지르는 공간이며 하이데거의 사물로 모아져 있는 세계로서의 장소이다. 나를 가로지르는 공간이라는 것은 아마도 내가 사물에 감정이입된 상태를 뜻할 것이다. 사물에 완전히 몰입하게 되면 나 자신은 투명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포르노적인 투명성이 아니다. 니체는 이 상태를 객관성이라고 정의했는데, 그 순간은 한 인간의 내면에서 가장 힘에 넘치고 자기 활동적인 생산의 순간이며 최고 종류의 구상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릴케는 다음과 같이 썼다. “만약 네가 한 나무의 생존을 훌륭히 이루어 내련다면 그것에 내부 공간을 주라, 네 안에 그 존재가 있는 그 공간을. 그것을 속박으로 둘러싸라. 하나 그것은 경계가 없고 네 자신의 포기 한가운데서 질서를 찾을 때에야 정녕 한 나무가 된다.” 이것은 내가 나무가 되는 예술이며, 이때 나는 사물로 다가간다.


그러나 채플의 내부에서 나는 그 반대의 경험을 했다. 그것은 내가 사물로 다가가게 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이미 나에게 와 있는 사물을 갑자기 발견하게 되는 듯한 것이었으며 공간이 나를 가로지르는 것이 아니라 내가 공간을 가로지르게 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장소가 전개되는 방향성이 역전된 이 생경한 느낌은 나로 하여금 나 자신의 더 깊고 내밀한 내부로 숨어들게 했고 나를 그곳에서 유일하게 이질적인 존재로 느껴지도록 했다. 그 공간은 나에게 전혀 파악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실제로 그 장소에서 유일한 인간적 척도가 되어준 것은 작은 나무 벤치와 20년간 움막에서 은수 생활을 했던 클라우스 수사의 흉상뿐이었다. 점점 위로 올라갈수록 그 공간(사물)은 좌표 체계에서(그것이 슈마르조가 인간의 내부로 옮겨놓은 그 세 개의 축이라고 한다면) 조금씩 엇나가 있는 듯 보였고 이해될 수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것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건물은 있는 그 자체라는 것뿐이다. 나는 이 대목에서 아마 보르헤스가 시에 대한 진술이 사실 전혀 필요 없는 것임을 말했을 때 가졌을 감정을 느낀다.





Wachendorf의 모래와 자갈이 들어간 콘크리트는 현지 농부들이 타설했다. 매달 50cm 높이의 콘크리트를 한 층씩 2년간 쌓았는데 건축가는 24개 층이 각각 하루의 한 시간을 의미한다고 했다. 원형 천막의 구조처럼 서로 맞닿게 기울어진 112개의 나무둥치는 채플의 내부 형틀이 됐다. 거대한 천막의 뼈대가 타면서 콘크리트 표면에는 재가 된 나무의 흔적이 남았는데, 지어진 지 10년이 지나 내가 3m 높이의 두꺼운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에도 아직까지 희미한 탄내가 풍겼다.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면서 위에서 떨어지는 빛에 의해 그 표면에 드러난 묘한 빛깔들을 볼 수 있었다. 짙은 갈색과 검은빛의 파랑 사이로 수많은 유리구슬들이 반짝였는데, 직경 5cm의 파이프가 관통해 있는 이 구멍들을 통해 연기가 끝없이 피어올랐을 것이다. 형틀이 전소된 후 파이프 구멍들은 유리구슬로 채워졌고 재가 남긴 흔적과 함께 표면은 마치 별들이 반짝이는 우주와 같은 모습을 하게 되었다. 바닥은 하나의 거대한 납 덩어리로, 꼭대기의 구멍과 같은 모양으로 빗물을 담고 있었다.



KakaoTalk_20180111_175401105.jpg
KakaoTalk_20180111_175420834.jpg



처음에 내부는 줌터가 느끼기에 충분히 검지 않았다고 한다. 불을 붙인 후 일주일이 지나 그는 내부를 점검했고, 다시 모든 구멍을 막은 뒤 일주일 동안 더 불을 태웠다. 줌터는 그의 책에서 미와 형태에 대해 사유하면서 모양과 질감, 냄새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긴 이 채플을 설계하는 데 그는 7년이 걸렸다.


나는 내가 채플에서 느낀 역전된 방향의 공간감(슈마르조의 단어)이 채플의 단일한 속성, 모놀리트로서의 그 공간(사물) 전체가 가지는 객관성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런 표현은 다소 애매하고 진부하게 들리지만, 그것의 존속이 너무나도 강력했기 때문에 그 옆에 선 나 역시 안으로 단단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것이 건축의 본질적인 역할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하이데거의 주장대로 그 안에 세계가 모아져 있는 것이라면, 이미 나는 그 표면에서 언뜻 우주를 보았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자연과 같이 하나임이 자명한 것이었고 너무나도 전체적인 것이어서 나는 그저 그 옆에 서 있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나는 그 내부에서 그 사물의 두께와 바깥의 공기를 한꺼번에 상상했다. 이것이 중요하다. 이 말은 내가 그것을 하나의 사물-공간으로 인지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콜하스는 공간(space)이라는 단어를 의도적으로 쓰지 않았다. 확실한 것은 그곳에서 조형되어 있는 것은 공간도 아니었고 형태도 아니었다. 꼭대기의 빛은 누군가에게는 베아트리체가 단테를 인도했던 통로,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자궁의 문과 같은 무수한 상징이 되겠지만 나에게 그것은 무한대와 무한소가 교차하는 한 지점처럼 느껴졌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것이 나를 가로지르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것을 가로질러야 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곳에서 이것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을 했다.



Luftaufnahme/ⓒ Wolkenkratzer 2015



그리스 신전의 중앙에는 셀라 혹은 나오스라고 불리는 창이 없는 방이 있었는데 그 안에는 그 신전의 주인인 신의 조각상이 있었다. 그 방은 오로지 제사장만 출입할 수 있었고 일반 서민들은 신전의 계단 앞에서, 신의 발치에서 신을 숭배했다. 그들은 신전에 들어갈 필요가 없었으며 신전은 그 자체로 그들에게 신과 같이 존재했다. 건축의 제의성은 이곳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줌터의 채플이 종교를 위한 건물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곳에서 상징을, 혹은 어떤 존재성을 발견한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반대로 그것은 종교이기 이전에 건축이기 때문에 제의적이 되었고, 채플의 경우 더군다나 그것은 신이 아닌 물성에 의해 완성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이 말은 써놓고 보니 묘한 표현이 되었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질료는 가능성이며 형상은 실재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채플은 하나의 거대한 사물로서 자신의 물성을 발산했다. 그것은 전혀 길들여지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질료의 힘이었고 나는 그것이 아감벤이 가능성에 대해 궁핍의 형상이라고 말했던 것과 같은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동시에 무엇에 대한 것이 아닌 자체적인 표현으로서의 그 현상은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나는 그것이 내가 그 공간을 파악할 수 없었던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전혀 결정되어 있지 않았고, 지속적으로 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줌터는 거대한 나무 움막을 태우면서 그곳에 은거했던 클라우스 수사를 생각했을까? 나는 건축가로 하여금 뒤집어진 천막에 대해 말하게 했을 때, 그것이 실제로 무엇을 뜻하는지 사실 알지 못했다. 그 내부도 외부도 아닌 하나의 역전된 형상, 궁핍의 형상 속에 서서 나는 건축가가 그 똑같은 자리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지 떠올려보려 했다. 불이 꺼지고 그곳에 남게 된 것은 살아 있는 것보다 더욱 강력한 기억인 것처럼 느껴졌다.





작은 헌금함 밑에는 클라우스 수사의 시구가 인쇄된 카드들이 있었다. 나는 그 첫 줄을 다음과 같이 읽었다. ‘PLACE IS ALWAYS IN GOD.’ 나는 마음이 평온해졌고 더 이상 그곳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한동안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나무 벤치에 앉아 있었는데 가끔씩 바람 소리가 들리는 것 외에는 공기가 멈춘 것 같은 고요함이 이어졌다. 집에 돌아와서야 나는 실제로 그 문장이 ‘PEACE IS ALWAYS IN GOD’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별로 달라질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사실 같은 말이며, 공간이 신이라는 생각은 대단히 시적이고 멋진 생각이기 때문이다.



PEACE IS ALWAYS IN GOD, FOR GOD IS PEACE.

PLACE IS ALWAYS IN GOD, FOR GOD IS PLACE.

keyword